설교

예수에게서 하나님을 만났다면 - 사 53:1~7; 고전 1:18~31; 마 25:34~40[향린교회/유튜브]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24-04-21 17:02
조회
171
2024년 4월 21일(일) 오전 11:00 향린교회
제목: 예수에게서 하나님을 만났다면
본문: 이사야 53:1~7; 고린도전서 1:18~31; 마태복음 25:34~40



자주 드낙거릴 뿐 아니라 여러 인연이 있지만, 향린 강단에 서는 일은 처음입니다. 불러 주셔서 영광이며, 감사드립니다.
설교 요청을 받을 때 특별한 주문이 있었습니다. 민중신학의 당대적 의미와 미래 전망을 이야기해 주면 좋겠다는 요청이었습니다. 사실상 강연 주제로 어울리는 요청인데, 예배 설교로 감당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강연과 설교를 늘 하지만, 그 언어와 격식을 구분해 온 입장에서 이를 통합해야 해서 조금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 성서 본문 말씀은 민중신학적 모티프를 잘 보여 주는 전거들에 해당합니다. 그런 만큼 민중신학자들이 자주 인용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사야서의 말씀은 고난받는 종으로서 메시아를 말하고 있고, 마태복음의 말씀은 최후 심판의 맥락에서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과 그리스도의 동일시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민중 메시아론의 핵심적 모티프를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의 말씀은 그에 상응하는 그리스도인의 실존을 나타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택하여 당신의 뜻을 이루는 하나님의 경륜을 일깨워 줍니다. 민중신학은 성서의 핵심으로서 그 말씀들이 전하는 진실을 당대의 역사적 상황 가운데서 되새기며 성찰하는 데서 형성되었습니다.

민중신학이 전태일 사건의 충격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거시적인 맥락에서 보면 그 단일한 사건의 충격에 앞서 일련의 정치사회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지만, 그 사건이 그 정치사회적 상황을 함축하는 하나의 극적인 사건이라는 점에서 전태일 사건을 계기로 민중신학이 탄생했다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닙니다.
민중 메시아론의 출발점도 사실은 그 사건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 분신사건이 발생한 직후 발표된 오재식의 “어떤 예수의 죽음”은 민중 메시아론의 단초를 보여 주는 의미심장한 글입니다. 추모사 형식을 빌은 이 글은 부제로 ‘고 전태일씨의 영전에’라고 명기하고 있을 뿐 정작 본문에서는 단 한 번도 그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예수의 죽음의 의미를 새기고 있지만, 곧바로 전태일의 죽음을 떠올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동시에 거꾸로 전태일의 죽음에서 예수의 죽음을 실감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1980년 광주항쟁 직후 시인 김준태가 “십자가를 짊어지고 무등산을 넘어 골고다의 언덕을 넘어가는 ... 하느님의 아들”을 노래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역사의 현장에서 분투하는 이들이라면 그 상상력과 절절한 마음을 교리적 잣대로 재단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 압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에게서 하나님을 만났다면, 오늘 그리스도인들이 민중에게서 예수를 만나는 경험을 하는 것이 결코 낯선 것은 아닙니다.

엄혹한 시대 상황 가운데서 그 상상력은 더욱 증폭되었습니다. 1970년대 초반 시인 김지하의 “금관의 예수”, 그리고 옥중 메모 “장일담” 등은 아주 두드러진 사례였습니다. 일정한 서사 형식을 갖춘 이 이야기들을 통해 신학자들은 더욱 강렬한 자극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점차 신학적 담론의 형식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1973년 「한국 그리스도인 선언」에서 예수가 ‘눌린 자들’, ‘가난한 자들’, ‘약한 자들’, ‘멸시받는 자들’과 함께한 것처럼 한국의 그리스도인들도 그들과 운명을 같이해야 한다고 고백했을 때, 그것은 민중 메시아론을 예고한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학의 입장에서 볼 때 그 인식은 성서의 증언 자체를 재조명하는 의미를 지녔습니다. 역사적 상황으로부터 자극을 받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성서의 증언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텍스트와 콘텍스트의 분리 불가는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민중 메시아론은 그와 같은 맥락에서 형성되고 구체화되었습니다.
서남동은 민중을 이렇게 정의하였습니다. 민중은 “생활가치를 생산하고 세계를 변혁시키며 역사를 추진해온 실질적 주체이면서도 지배권력으로부터 소외·억압되어 천민·죄인으로 전락했”지만, “역사의 발전에 따라서 자기의 외화물(外化物)인 권력을 원자리로 되돌리고 하나님의 공의 회복을 주체적으로 이끌어서 그로써 구원을 성취하도록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인식을 공유한 민중신학자들에게서 민중 메시아론은 본격화되었습니다.

안병무는 특별히 민중 예수가 일으킨 사건을 주목했습니다. 안병무는 예수를 개인적 인격으로 파악하는 것을 거부하고 집단적 인격을 대표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따라서 ‘민중 예수’는 예수 그 자신이 민중을 대표한다는 것을 뜻하며 동시에 언제나 민중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가운데 더불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여기서 예수와 민중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주체와 객체로 분리되지 않고 혼연일체로서 주체를 형성합니다. 안병무는 혼연일체로서 그 주체가 일으킨 사건 속에서 역사적 예수의 진면목을 찾습니다.
그 사건은 이천 년 전 갈릴리 역사적 현장에서 일어난 유일회적 사건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치 화산맥이 분출하듯, 끊임없이 역사 가운데서 재연됩니다. 안병무가 전태일사건을 서슴없이 예수사건이라 말한 것은 그런 맥락에서입니다. 안병무는 바로 그 민중사건을 증언하는 것이 민중신학의 핵심적 과제라고 천명하였습니다.

서남동의 민중 메시아론은 그의 선명한 신학적 틀로서 ‘두 이야기의 합류’ 구조 안에서 해명됩니다. 서남동은 한 맺힌 민중들의 한풀이 이야기 가운데서 ‘고난받는 민중의 메시아성’과 ‘한의 속량적 성격’을 주목하였습니다. 그것은 전통적인 신학이 말하는 죄로부터의 구원과는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한마디로 “죄란 지배자의 언어이고 한은 민중의 언어”입니다. 죄로부터의 구원은 그 주체와 대상을 구분하는 반면 민중의 언어로서 한은 그 자체로 속량적 성격을 지닙니다. 지배체제에 의해 쌓인 한을 민중이 스스로 극복해가는 한풀이에서 그 속량적 성격이 드러나며 그것이 곧 민중의 메시아성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민중의 한풀이는 단지 개인적 원한에 대한 복수와 같은 것이 아닙니다. 한에 매인 자신을 해방할 뿐 아니라 한을 쌓는 사회구조를 변화시킴으로써 세상을 구원하는 역할을 뜻합니다(恨과 斷의 변증법). 민중은 스스로가 ‘한의 사제’로서 역할을 맡습니다. 민중 스스로 해방하는 능력을 주목한 것입니다.
민중의 메시아성은 한국 민중의 이야기에서는 물론 성서가 증언하는 고난받는 하나님의 종(이사 52:13-57:12)에게서, 또한 그 메시아적 전망을 실제로 구현한 예수 그리스도(마태 25장)에게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나아가 서남동은 착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누가 10장)에서 강도 만난 사람이 ‘한의 그리스도’ 역할을 맡는 것으로 재해석하기도 하였습니다.

민중의 메시아성에 대한 통찰은 김용복에게서도 중요한 주제였습니다. 김용복은 ‘정치적 메시아니즘’과 ‘메시아적 정치’를 구별하고, 민중 가운데서 민중을 주체화하는 ‘메시아적 정치’의 본보기로서 예수의 길을 강조하였고, 그 길을 ‘종의 도’라 일렀습니다. 김용복은 이사야서의 고난의 종과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 정치의 결정적 전거로 삼습니다.
정치적 메시아주의는 민중을 역사적으로 무력한 존재로 만들거나 비주체적인 대상으로 만듭니다. 반면에 예수의 메시아적 정치는 민중을 자신들의 운명에 대한 역사적인 주인들로 만듦으로써 민중의 역사적인 주체성을 실현하는 정치학입니다. 이 점에서 메시아적 정치는 민중의 메시아적 정치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메시아적 정치는 현대의 모든 정치적 메시아주의를 폭로하고 새로운 대안을 열어 줍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신학적 통찰과 더불어 민중신학은 신학하는 방법을 변화시키고, 신학적 지평을 확장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신학의 패러다임을 변화시켰습니다.
‘텍스트와 콘텍스트의 분리불가’(안병무), ‘두 이야기의 합류’와 ‘계시의 하부구조’(서남동) 등의 개념은 신학하는 방법의 전환을 단적으로 말해 줍니다. 이로부터 신학은 교회의 언어로 한정되지 않고 민중들이 처해 있는 삶의 현장에서 역사적으로 형성된 가치들과 소통하는 신학으로 변모하게 되었습니다. 신학적 지평의 확장과 소통의 강화를 가장 잘 보여 주는 것이 안병무의 ‘공(公)의 신학’입니다. 그것은 성서의 핵심이자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요체로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믿음을 당대의 역사적 상황 가운데서 구체화하고자 한 신학적 성찰의 시도였습니다. ‘공(公)의 신학’이 1980년대 민중운동의 절정기에 반자본주의적 전략의 모색과 더불어 폭발한 사회구성체 논쟁과 긴밀히 소통하고자 한 신학적 성찰의 시도였다는 것을 주목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역사화로서 ‘공’(公)의 신학은 공적인 것의 소멸 현상이 노골화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더욱 절실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해방과 분단 이후 한국 사회는 한편으로는 눈부신 발전을 이뤘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한국 사회는 심각한 문제들을 안고 있습니다. 몇 차례에 걸친 정권교체가 있었고, 2016-17년에는 촛불항쟁으로 새로운 변화가 기대되었지만, 1987년 민주화항쟁 이후 변화한 것에 비하여 과연 얼마만큼 변화되었을까요? 경제개발 시대 주도권을 쥐어왔던 지배세력은 변화되지 않았고 지금도 경제성장 제일주의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경쟁과 효율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고 있으며 사회적 정의와 평화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습니다.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고, 그에 편승하여 사회적 차별과 혐오의 정치가 폐해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는 정치적 민주주의를 제약하는 효과로 귀결되고 있습니다.
7년 전 촛불민의를 따라 새 정부가 구성되었을 때만 해도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는 낙관적이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우익 포퓰리즘이 득세하는 상황에서도 예외적인 상황이 펼쳐진 것에 안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촛불정부로 일컬어진 지난 정부하에서 그 기대는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한국 사회를 지배해 온 재벌·금융·행정·사법·언론 등이 결탁한 기득권 카르텔이 강고하다는 것을 확인해야 했고, 그 세력은 2022년 두 차례에 걸친 선거를 통해 다시 합법적으로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사회적 불평등과 불공정을 강화한 세력이 오히려 공정을 내세우며 화려하게 복귀했습니다.
그렇게 등장한 정치세력은 시장의 법칙을 전면에 내세워 능력주의와 경쟁주의를 강화할 수밖에 없는 날 것의 신자유주의 기조 위에서 정책을 펼쳤습니다. 환경과 에너지 대안은 뒷걸음치고, 남북 및 국제관계에서도 긴장이 고조되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검찰권력을 기반으로 하는 ‘법치주의’로 정치 자체가 실종되었습니다. 국민이 양분되어 심각한 갈등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 사이 한국은 ‘독재화하는 국가’ 군으로 전락했습니다.
이번 4월 10일 22대 총선으로 그 정치세력에 대한 심판이 이뤄졌지만, 전망이 그렇게 낙관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집권세력의 폭주를 제어하고 권력구조를 개편하는 의미 있는 성과가 기대되지만, 민중의 주권을 확고히 하고 삶의 권리를 확장하는 사회구조의 개편은 아직 요원해 보입니다. 심판을 받은 집권세력은 아직도 정신차리지 못하고 있고, 제1야당 세력이 그 집권세력과 그 이해관계를 얼마나 달리하고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더더욱 주변세력으로 전락한 노동자와 소수자를 대변할 진보정당이 사실상 괴멸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향후 전망을 낙관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적과 동지를 이분화하는 세계적 세력판도와 그에 편승하는 정치세력이 득세하는 세계적 형국 가운데서 어떤 세력도 문제해결의 전망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더욱 암담합니다.

한국적 자본주의의 전개 과정에서 형성된 비판적 성찰 담론으로서 민중신학의 문제의식은 바로 그 현실 가운데서 새삼 조명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 통찰은 공적인 것의 소멸 현상이 심화하는 오늘의 현실을 넘어설 뿐 아니라, 공을 사유화하는 것을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적 체제와 그에 따른 삶의 방식을 넘어서는 실천적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어떤 신학이든 영원할 수는 없습니다. 신학은 각기 그때그때의 상황에서 진지하게 신앙의 문제에 응답하는 시도일 뿐입니다. 어떤 신학이든 각기 시대적 소임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시대적 소임을 다했다고 해서 그 신학의 생명력이 다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특정한 시대의 빛나는 통찰은 끊임없이 재해석되는 가운데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합니다. 오백 년이 넘은 종교개혁의 신학은 여전히 생명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천년이 다 된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그보다 더 오랜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 또한 여전히 재해석되는 가운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천 년이 넘었고, 구약의 지평으로 연장하면 수천 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서남동은 복음은 원래 가난한 자들의 복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정신을 회복한 것이 민중신학입니다. 그 복음의 정신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고자 했던 신학의 생명력이 다 했다면 아마도 가난한 자들에게 기쁨이 되는 소식이 굳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되었다는 뜻이 아닐까요? 여전히 가난한 이들에게 기쁨의 소식이 절실한 세상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갈등과 분쟁이 지속되고 있고 그 가운데서 고통을 겪는 이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민중신학의 생명력 또한 지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물론 민중신학이 표방한 몇 가지 명제를 교조화하는 것으로 이뤄질 수는 없습니다. 그때그때마다 창의적인 해석이 더해질 때 그 생명력은 지속될 것입니다.
민중신학의 소임은 다했다고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이 그다지 변하지 않고 사람들의 고통이 여전한 상황 가운데서, 혹시라도 안락함의 유혹에 빠지려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면 민중신학은 그 유혹에 빠진 삶을 방해하는 등에와 같은 역할로 끊임없이 일깨울 것입니다.*

[파송사]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는 말씀의 진실과 더불어 우리의 신앙의 지표를 새삼 확인하고 정진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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