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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논문/강의 | 시론 | 단상 | 기타 |
오늘 한국교회가 지향해야 할 사회선교와 영성
 최형묵    | 분류 : 논문/강의 | 2017·02·10 11:10 | HIT : 610 |
대한성공회 성직자 연수회 “사회선교와 영성”
2017년 2월 2일(목) 오전 9:00~11:00 / 성공회 대성당


오늘 한국교회가 지향해야 할 사회선교와 영성

최형묵(기장총회 교회와사회위원회 부위원장 / 천안살림교회 / 한신대 / 기독교윤리학)


1. 시작하는 말

발제 요청을 받고 일단 수락하기는 했지만 적잖이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사회선교와 영성”을 주제로 한다면 성공회 내부에 더 좋은 적임자가 있을 텐데, 교단 밖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적실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앞섰다. 그러나 이 자리가 늘 외부 인사를 초청하여 생각을 함께 나누는 기회라는 해명에 다소 안도하고 교류와 연대의 차원에서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제 자체가 포괄적이기에 성공회 내부 사정을 충분히 알지 못한 사람으로서 또 염려가 없지 않았다. 결국 국외자의 입장에서는 스스로 생각하는 사회선교의 의미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것이 일반론의 경향을 띨지라도 발제자의 경향을 인지하고 또 신뢰(?)하는 가운데 맡겨준 만큼 이 자리에서 계신 분들에게 모종의 영감을 줄 수 있다면 다행이겠다는 기대로 감히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이 자리는 사회선교에 관한 학구적 논의를 하고자 하는 자리이기보다는 실천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자리로 알고 있다. 본격적인 학술적 논고를 준비할 겨를도 없었거니와 또한 취지 자체가 실천적 차원에서 사회선교의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라 이해하고 있기에 가능한 그 취지를 따라 생각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먼저 양해를 구할 사항으로, 주제가 “사회선교와 영성”이기는 하지만 주로 ‘사회선교’의 의의에 초점을 맞추고 필요한 맥락에서 제한적으로 ‘영성’의 의의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2. 에큐메니칼 지평에서의 선교론과 한국교회

오늘 한국사회에서 교회에 요청되는 사회선교의 의의를 분명히 하기 위해 먼저 세계 에큐메니칼 지평에서 선교의 의미를 새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에큐메니칼 운동의 방향은 세계적 차원에서 그 운동을 대변하는 세계교회협의회의 총회 주제와 그 결의 문서들 가운데 일정하게 반영되어 왔다. 2013년 한국 부산에서 열린 제10차 세계교회협의회 총회의 주제는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였고, 총회는 그 주제하에 매우 다양한 신학적 문서들을 채택하였다. 주제의 선정과 문서들의 채택은 세계교회협의회의 공의회적 절차상 특정 주도집단의 일방적 선도에 의해 이루어진 것은 아니며 지속적인 토론과 합의의 과정을 통해 이뤄진 것이다. 그것은,  오늘 세계적 차원에서의 에큐메니칼 신학의 방향이 지역 및 국가 단위 교회들의 신학적 입장을 수렴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오늘 우리가 세계적 차원에서 에큐메니칼 신학의 방향과 그 성과를 검토하는 것은 바로 오늘 우리들의 신학적 전통을 재점검하고 문제의식을 더욱 첨예하게 가다듬는 의의를 지니고 있다.  
제10차 세계교회협의회 총회의 주제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는, 그간 세계 에큐메니칼 영역에서 꾸준히 지속되어온 신학적 논의의 수렴이요, 동시에 오늘의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 가운데서 야기된 전 지구적 위기에 대한 세계 교회의 문제의식을 분명히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세계교회협의회 총회 주제 가운데 처음으로 ‘정의’의 문제가 부각된 것은 오늘의 세계 상황에 대한 긴박한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하겠다. 제10차 세계교회협의회 총회의 주제 및 그 주제하에 채택된 일련의 문서들 가운데 무엇보다 두드러진 신학적 문제의식은 오늘 세계의 정치경제학적 위기와 생태학적 위기에 대한 인식의 결합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강원돈, “제10차 WCC 부산총회 공식문서 「만물을 위한 생명과 정의와 평화 - 행동의 촉구」에 대한 사회윤리적 분석과 평가”, 『신학사상』163(2013. 가을) 참조.)  
오늘 세계 현실에서 부의 불평등 문제와 사회적 약자들의 위기, 그리고 생태계 전반의 위기 현상은 끊임없이 제기되는 문제로 인식되고 있거니와 세계교회협의회를 중심으로 하는 에큐메니칼 신학의 차원에서도 그에 대한 문제는 끊임없는 논의의 주제가 되어 왔다. 하지만 에큐메니칼 신학에서 양 측면의 지구적 위기의 문제가 다뤄질 때 오랫동안 그 상호관계에 대한 규명이 없는 채 그저 병렬적으로 다뤄졌을 뿐이다. 말하자면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는 시장의 위기로서 다뤄졌다면 생태적 위기의 문제는 과학기술의 남용에서 비롯되는 위기로 다뤄져 왔을 뿐이다. 그런데 제10차 세계교회협의회 총회는 주제 자체가 상호간의 관계에 대해 암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채택된 문서 가운데서 연관된 문제의식을 뚜렷이 드러내 주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인식에 도달했다.
그 인식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 문서 가운데 하나가 「만물을 위한 생명과 정의와 평화 - 행동의 촉구」이다. 이 문서는 “생명을 위한 경제는 가능할 뿐만 아니라 형성되어 가고 있고, 하나님의 정의가 그 바탕을 이룬다.”고 함으로써 그 기본적인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피조물들의 탄식과 가난한 민중의 외침에 귀 기울일 것을 요청하면서 상호 연관된 위기들의 뿌리에 “탐욕과 불의, 손쉬운 이윤추구, 불의한 특권,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목표를 무시한 단기적 이익의 추구”가 자리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나아가 오늘의 상호 연관된 위기들을 극복하기 위한 정의의 다양한 원천들이 있음을 주목하면서 그리스도인들과 다른 종교인들, 그리고 시민사회의 여러 파트너들과 협력을 강조한다.
결국 탐욕의 경제가 사회적 불의를 야기하고 생태계의 위기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만큼 정의를 회복하는 것을 그 위기 해법의 출발점으로 삼고, 이를 위하여 더불어 연대적 실천에 나서야 한다는 것으로 집약된다. 이러한 인식은, 인간사회의 경제계와 전 지구적 생태계의 관계를 에너지-물질대사의 맥락에서 파악하고, 나아가 경제계에서 이루어지는 에너지-물질의 형태변화 과정과 소비 과정이 자본의 축적 과정을 매개로 해서 팽창적 성향을 갖게 된다는 점을 인식함으로써 사회경제적 불의와 생태적 위기가 얽혀 있는 관계를 더욱 분명하게 규명하는 것으로 나아갈 때 보다 심화될 수 있을 것이다.(강원돈, 앞의 글) 이렇게 심화된 인식을 바탕으로 할 때 오늘 지구적 위기에 대한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안 모색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사회경제적 불의와 생태계의 위기를 이와 같이 연계된 것으로 인식하는 관점과 마찬가지로 오늘의 에큐메니칼 신학이 도달한 ‘정의로운 평화’의 개념 또한 같은 맥락에 있다 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제10차 세계교회협의회 총회의 선교문서 「함께 생명을 향하여: 변화하는 지형 속에서의 선교와 복음전도」가 제기한 선교에 관한 신학적 인식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선교문서는 하나님의 선교가 “모든 생명과 오이쿠메네 전체가 하나님의 생명의 망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에 기반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으며, “주변으로부터의 선교” 개념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의 선교가 모든 생명에 미친다는 것은 인간사회에 제한되지 않고 하나의 유기체로서 전체 생명 세계에 미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경제적 위기와 생태계의 위기를 통합적으로 인식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 있다.
또한 “주변으로부터의 선교” 개념은 중심에서 주변으로 이동하는 시혜로서 선교가 아니라 갈등의 체제 안에서 주변으로부터 비롯되는 선교로의 전환을 뜻한다. 여기서 주변은 가난한 사람, 여성, 원주민 등 다양한 주변세력을 말하는 것이며, 선교가 주변으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는 것은 이들의 주도성, 곧 이들의 요구에 부응한 선교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기존의 질서 안에서 배제되고 주변화되어 있는 조건에 처해 있는 이들의 요구에 귀 기울이며 이들의 인식론적 특권을 인정한 것이다.
여기서 주변은 인간사회의 차원에서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생명 세계 전체 차원으로 확장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있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 자연은 그야말로 ‘환경’으로만 간주되어 왔다. 그것은, 자연이 상호 연결된 생명의 망 안에서 인식된 것이 아니라 주변으로 인식되어 왔다는 것을 뜻한다. 자연은 일방적 지배의 대상이요 그저 자본의 이윤추구를 위한 자원으로서 착취의 대상이 되어 왔다는 점에서 주변으로 인식되어 온 것이 명백하다. 주변으로부터의 선교 개념은 이러한 인식의 극복을 뜻한다. 이 점에서 주변으로부터의 선교 개념 또한 사회경제적 위기와 생태계의 위기를 통합적으로 인식한 것과 같은 맥락에 있으며, 그것은 오늘의 세계적 위기 극복의 출발점으로서 정의를 강조하는 입장을 달리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오늘 에큐메니칼 신학은 정의ㆍ평화ㆍ생명을 단지 병렬되는 과제로 인식하기보다는 상호 연관된 과제로 인식하고 있고, 이를 통합하는 신학적 틀을 형성하는 과정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앞서 지적했듯이, 단지 에큐메니칼 선도 그룹의 향도에 의한 것만은 아니고 지역적ㆍ국가적 수준에서 지속되어 온 신학적 방향 모색의 수렴이라는 의의를 지니고 있다. 오늘의 선교론은 바로 이와 같은 신학적 입장을 기초로 하고 있으며, 한국교회 안에서 에큐메니칼 정신에 충실한 교회들의 선교론 역시 이와 같은 신학적 입장을 공유하고 있다.    


3. 오늘 한국사회에서의 사회선교와 영성

앞서 말한 세계 에큐메니칼 지평의 선교론에 따르면, 선교의 의미 자체가 세상 안에서 복음을 구현하는 교회의 존재방식을 뜻하는 것인 만큼 그 자체로 이미 ‘사회선교’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하겠다. 물론 에큐메니칼 지평의 선교론이 ‘사회선교’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고 그야말로 ‘통전적 선교’를 뜻하는 것이지만, 그 안에 이미 ‘사회선교’의 의미를 포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굳이 ‘사회선교’라고 말할 때, 그 의미가 무엇인지 정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 정의(定意)는 물론 그 개념이 통용되는 역사적ㆍ현실적 맥락에서 그 핵심적 의미를 포착하는 것이 될 것이다. 사회선교 개념이 통용되는 역사적ㆍ현실적 맥락에서 그 의미를 생각하면, 대개 정치ㆍ경제ㆍ사회적 차원에서의 교회의 책임과 실천을 함축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정치적 차원에서의 민주화, 경제적 차원에서의 정의의 구현, 사회적 차원에서 복지의 실현과 관련되어 있는 교회의 책임과 역할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의미를 엄밀하게 정의하자면 더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겠지만, 역사적ㆍ현실적으로 통용되는 의미를 보자면 대략 그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사회선교의 방향을 모색한다고 할 때 우리는 대략 그와 같은 개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기왕 오늘의 주제가 “사회선교와 영성”이니 만큼 ‘영성’의 의미 또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영성’을 과연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널리 사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가장 정의하기 어려운 것이 ‘영성’이지만, 주어진 주제 탓에 숙제하는 심정으로 평소 생각하는 바를 정의해본다.
‘영성’은 한 인격에게서 신앙을 형성하는 근본적 차원에 해당하는 것으로, 그 적극적 의미는 마땅히 나로부터 타인으로 이어지는 공감의 능력을 말하는 것이요 그로부터 비롯되는 어떤 삶의 정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통상 한국 교회 안에서 운위되고 체험되는 영성에서 그와 같은 적극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 교회 안에서 체험되는 영성은 많은 경우 개인에게 체험되는 은사로서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그렇게 개인에게 체험되는 은사로서 영성은 개인에 대한 몰입의 감정을 더욱 강화시키고만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영성의 적극적 의미, 즉 나로부터 타인으로 이어지는 공감의 능력을 말하는 것이요 그로부터 비롯되는 어떤 삶의 정향이라는 의미에서 볼 때, 영성은 사회선교의 실천을 지향하는 인격적 정향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오히려 교회 밖에서 ‘사회적 영성’을 말하는 것도 영성의 그 적극적 의미를 환기시켜 주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니까 그 영성은 한 인격의 완성이 타인에 대한 공감의 능력을 갖추고 타인과의 연대적 실천을 수행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이뤄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개인적 수행과 사회적 실천을 아우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지금 ‘사회선교’를 말하면서 그와 직결하여 ‘영성’을 말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답이 주어져 있는 문제의식이라 할 수 있다. 사회선교가 교회 또는 개별 그리스도인에게 부차적으로 부가된 과제가 아니라 교회 또는 그 교회를 구성하는 개별 그리스도인의 영성의 구체적 표현으로서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사회적 영성’이라는 개념을 그 정향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로 이해해도 좋겠다.

그 사회적 영성의 실현은 구체적 삶의 정황에 대한 인식을 기반으로 하며, 그 안에서 교회 또는 그리스도인의 몫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필요로 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주류 한국 교회는 한국적 근대화에 편승하는 가운데 그 논리를 내적으로 체현하며 성장해왔다. 단순히 수동적으로 편승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한국적 근대화의 전도사로서 역할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사회학자 김덕영은 경제성장과 동일시하는 근대화를 ‘환원근대’로 명명하는 가운데, 기독교가 바로 그 환원근대의 전도사였다고 평가한다.(김덕영, 『환원근대』(서울: 도서출판 길, 2014).) 그러나 우리는 한국적 근대화의 과정에 적응하기보다는 그 문제에 대해 대응하며 다른 사회를 형성하기 위해 애써 온 또 다른 한국 교회의 전통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근대화에 적응의 길을 걸어온 교회를 ‘성장주도형 교회’라 할 수 있다면, 대응의 길을 걸어 온 교회를 ‘변혁지향형 교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에 대해 다른 책에서 비교적 상세하게 논한 바 있기에 여기에서는 상론하지는 않는다. 최형묵, 『한국 기독교의 두 갈래 길』(서울: 이야기쟁이낙타, 2013)[초판 『한국 기독교와 권력의 길』(서울: 로크미디어, 2009)의 개정증보판]; 또한 김진호, 『시민K 교회를 나가다』(서울: 현암사, 2012) 참조.) 오늘 “사회선교와 영성”의 문제를 고민하는 우리들은 후자의 전통에 서 있다고 믿는다. 우리가 한국적 근대화에 대해 문제의식을 분명히 느끼고 그 대안의 모색을 철저히 하고자 한다면 오늘 한국 사회에 대한 인식을 더욱 분명히 하여야 하고 그 가운데서 우리의 사회선교 방향을 설정해야 할 것이다.
한국 사회에 대한 인식은 별도의 과제이기에 이 자리에서 길게 이야기하지는 못하고 그 중요한 특징만을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한국 사회는 가장 빠른 속도로 경제적 산업화를 이룬 한편, 오랫동안 지체되었지만 역시 빠른 경제적 산업화가 이뤄지는 가운데 괄목할 만한 정치적 민주화를 이룬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 한국사회는 경제적 산업화와 정치적 민주화 양 측면에서 모두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양적 규모의 측면에서 놀라운 경제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불평등구조의 심화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권리가 제약당하고 있고, 그것은 실질적인 민주화의 진전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특별히 경제성장을 일궈내는 데 실질적 주역으로서 역할해온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는 여전히 온전하게 보장되고 있지 않을 뿐 더러 경제적 양극화로 광범위하게 확대된 빈곤층이 심각하게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다. 그나마 경제민주화와 복지가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지만, 그에 관한 실질적인 진전은 부진한 상태이다.
통상 그러한 한국 사회를 천민 자본주의의 발로로 보지만, 오히려 사실은 자본주의적 합리성이 극대화된 양상이라고 보는 것이 정당할지도 모른다. 자본주의적 폐해를 가장 극단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사회라는 이야기이다. 여러 가지 사회적 지표가 말해주듯이 한마디로 살고 싶지 않은 사회가 아닌가!  
오늘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촛불은, 최고 권력자의 무능과 비리를 겨냥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야말로 한국 사회에 누적되어 온 적폐를 청산하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국 교회의 사회선교는 그러한 한국 사회의 요구를 제대로 알아차리고 그 요구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비상한 정치적 국면에서 정치적 행동에 나서는 것은 물론 일상적 삶의 차원에서 고질적 병폐를 극복할 수 있는 사회적 실천을 지속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그런데 ‘사회선교’를 ‘영성’과 연결시켜 생각하는 관점에서 환기하자면, 교회 또는 그 교회를 구성하는 개별 그리스도인은 사회선교적 요구에 부응하는 삶의 정향을 분명히 하고 그에 걸맞는 삶의 방식을 내적으로 선취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가장 극단적으로 자본주의적 폐해를 겪고 있는 사회 안에서 어떤 삶의 정향과 삶의 방식이 이 필요할까? 이에 대해서는 하나의 화두와 같은 실마리만 던지고자 한다. 무한한 욕구(wants)의 충족을 위한 삶으로부터 필요(needs)의 충족을 위한 삶으로의 방향 전환이 그 실마리이다. 그 삶의 지향을 모색하는 데 그리스도교는 매우 풍부한 유산을 지니고 있다(이에 대해서는 최형묵, “그리스도교와 자본주의 - 인간의 삶을 위한 교회의 선택”,『신학과 철학』제29호(서강대 신학연구소, 2016.12) 참조.) 복음의 요청이자 동시에 오랜 그리스도교 전통의 교훈을 되새김으로써 우리는 진정한 인간의 삶을 보장하는 삶의 정향을 깨닫고 구현할 수 있으며, 그 정향을 따라 적절한 사회선교를 지향할 수 있다.


4. 밖에서 본 성공회의 사회선교와 영성

아마도 외부에 발제를 의뢰했을 때는 외부의 시선에서 성공회의 사회선교와 영성에 대한 평가를 크게 기대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발제자는 성공회의 사회선교와 영성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인상을 갖고 있을 뿐 그 내밀한 속사정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지 못한다. 이 자리에서 평소에 갖고 있는 긍정적 인상을 전해주는 것이 여기에 함께 한 동역자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저 인상기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소략하게나마 말씀드리고 싶다. 내밀한 사정을 파악하고 진단하는 것은 성공회 내부 동역자들의 몫이라 생각하고, 발제자는 오늘 이 자리에서 그로부터 배울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성공회는 한국 사회와 교회 안에서 매우 의미 있는 소수로서 역할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발제자는 솔직히 말하건대 교리나 전례 등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고, 주로 교회의 사회적 실천, 즉 사회선교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성공회는 한국 사회 안에서 한국기독교장로회와 더불어 진보적 성향으로 교단으로 평가받을 만큼 진취적 역할을 감당해 왔다. 지난 노무현 정부 시절 거의 유일한 개혁입법으로서 교육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 사학법이 입법되었을 때 그 취지를 전적으로 수용한 교단은 대한성공회와 한국기독교장로회(성공회대와 한신대) 딱 두 교단뿐이었다. 이는 두 교단이 한국 사회와 교회 안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을 상징적으로 드러내주고 있다.
그 위상에 걸맞게 성공회는 비상한 국면에서 정치적 실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을 뿐 아니라, 사회복지시설의 운영, 나눔의 집 운영 등과 같은 활동에서도 선구적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그와 함께 앞서 말한 ‘사회적 영성’에 부합하는 영성운동에서도 여러 선구자들이 있다. 발제자로서는 그 역할을 더욱 효과적으로 감당함으로써 한국 사회와 교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견인차 역할을 맡아 달라는 격려 외에 무슨 말을 덧붙일 수 있을까 싶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성공회는 한국 교회 안에서 소수 교단에 지나지 않는다. 성공회보다는 크지만 역시 소수 교단으로 간주되는 기장보다 더 그 규모면에서 소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교인지 개신교인지 모호하게(?) 인식되는 교단의 특성과 전례의 특성 등 상징적 효과가 더해진 이점을 누리고 있는 것은 성공회로서 다행인지도 모르겠으나, 어쨌든 소수 교단인 것은 틀림없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그 소수의 비율이 사회적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 그대로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 교회 안에서 진보교단으로 분류되는 성공회와 기장을 합친 비율은 2%에 지나지 않지만, 두 교회의 사회적 영향력은 그 비율을 훨씬 상회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야말로 의미 있는 소수로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며 자긍심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한다.


5. 맺는 말

이미 앞에서 말한 선교 개념에 따르면, 선교란 교회의 부차적 과제가 아니라 그 자체로 교회 본연의 존재방식을 뜻한다. 이런 의미에서 사회선교란 교회가 처한 구체적 사회 안에서의 교회 본연의 존재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교회의 사회선교는 그로 인한 부수적 효과 면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로 인한 교회의 성장 효과 또한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사회선교로 교회의 사회적 공신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순전히 교회의 성장을 목표로 한다면 ‘사회선교’보다는 이른바 ‘전도’가 효과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장 자체가 목적이 될 때 그 폐해가 어떤 것인지 한국 교회의 역사와 현실을 통해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교회 본연의 몫을 다하는 가운데 은혜로 그 열매를 누리는 태도가 마땅하다 할 것이다.
오늘 우리가 한국 교회의 사회선교 방향을 모색할 때, 19세기 독일의 ‘내방선교’가 주는 교훈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해외선교가 성행하던 당시 독일 교회 안에서는 자본주의적 산업화의 폐해로 인한 민중의 문제에 교회가 책임적 자세로 임하는 것을 선교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인식하고 실천하는 흐름이 형성되었다. 그것이 오늘날 사회국가 내지 복지국가로서 독일을 형성하는 중요한 배경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앞서 말했다시피 지금 한국 사회는 자본주의적 폐해를 가장 극단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 한국 교회가 감당할 몫은 자명하지 않은가? 한국 교회는 그 폐해를 극복하고 평범한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에 대한 전망을 갖고 그것을 위해 실천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오늘 한국 교회 사회선교의 기본방향이 되어야 한다. 그 방향에서 실천적 과제는 일상적 사회선교의 실천과 비상한 국면에서의 정치적 실천 모두를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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