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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논문/강의 | 시론 | 단상 | 기타 |
국민주권 시대를 향한 교회의 역할
 최형묵    | 분류 : 논문/강의 | 2017·02·10 11:11 | HIT : 585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2017년 사회선교정책협의회
2017년 2월 9일(목) 11:00 ~ 10일(금) 오전 / 수안보 드림리조트
“2017년 대선을 준비한다 - 국민주권 시대를 향한 교회의 역할”


국민주권 시대를 향한 교회의 역할


최형묵(정의평화위원회 부위원장 / 천안살림교회 / 한신대 / 기독교윤리학)


1. “변하지 않는 것으로 모든 변하는 것에 대응한다.” - 접근방법

그 날 저녁이 되었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바다 저쪽으로 건너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들은 무리를 남겨 두고, 예수께서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갔는데, 다른 배들도 함께 따라갔다. 그런데 큰 광풍이 일어나서, 파도가 배 안으로 덮쳐 들어오므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찼다.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를깨우며 “선생님,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 아무렇지도 않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깨어나셔서 바람을 꾸짖으시고, 바다더러 “고요하고, 잠잠해져라” 하고 말씀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고요해졌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왜들 무서워하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서로 말하기를 “이분이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까지도 그에게 복종할까?” 하였다.(마가복음 4:35~41)

“변하지 않는 것으로 모든 변하는 것에 대응한다(以不變 應萬變).”(胡志明)

“하나님,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드릴 수 있는 고요함을 우리에게 주십시오. 바꾸어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우리에게 주십시오. 두 가지를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우리에게 주십시오.”(라인홀드 니버)


2. 현재 촛불정국의 의의 - 변화되어야 할 것들

현재 촛불정국의 의의는 촛불광장에서 분출하는 요구 자체를 통해 충분히 가늠해볼 수 있거니와 이미 여러 논자들에 의해 반복해서 확인되고 있고 우리들 모두에게 대체로 공유되고 있다. 현재의 촛불정국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부터 촉발된 것이기는 하지만, 단지 한 통치자의 무능과 비리 문제에 한정되지 않고 우리 사회에 누적되어 온 전반적인 적폐와 관련되어 있다. 대체로 공유되고 있는 바를 확인하자면 대략 다음 몇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오늘 촛불광장은 87년 체제의 한계를 극복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87년 체제는 그간 누적되어 온 민주화운동의 성취이지만 동시에 명백히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1987년 6월항쟁의 결과로 대통령 직선제의 실현과 일정한 권력견제 장치, 그리고 경제민주화 개념의 도입 등을 포함하는 헌법 개정과 함께 시작된 87년 체제는, 이전의 권위주의 체제와 결별하고 민주적 절차를 확립했다는 점에서 분명한 성취이지만, 민의를 온전히 반영하기 어려운 정치구조를 온존시켰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6월 시민항쟁과 7~8월의 노동자항쟁이 명백히 분리된 조건에서, 그것도 제도정치권에 개혁적 조치가 위임된 조건에서 이뤄진 결과였다. 단적으로 말해 87년 체제는 형식적ㆍ절차적 민주주의에서 큰 진전을 이뤘지만, 내용적ㆍ실질적 민주주의에서 한계를 지니고 있다.
오늘 촛불광장은 그 절반의 실패를 뚜렷이 기억하고 있으며, 그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
둘째, 오늘 촛불정국은 박정희 시대를 마감하고 그 신화를 무너뜨리고 있다. 박정희 시대의 패러다임은 반공주의ㆍ성장주의ㆍ지역주의ㆍ권위주의 등으로 집약되거니와, 그것이 신화가 된 것은 그에 대한 맹목적 믿음이 우리 사회에 깊숙이 뿌리 내리고 모든 가치판단을 중지시키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10년의 민주정부 시절에도 박정희 시대의 경제적 성장주의는 결코 포기된 적이 없으며, 더욱이 보수정권의 재등장은 그 신화에 대한 믿음과 긴밀히 관련되어 있었다. 박근혜 정부의 등장은 거의 전적으로 박정희 신화에 힘입은 바 컸다. 다만 차별화된 전략이 있었다면 시대적 요구로서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는 것이었다. 박근혜 정부의 그 공약이 진정성이 있었고 그렇게 성공적으로 시행되었다면 박정희 신화가 더 생명력을 지니게 되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실패한 지금 박정희 신화 역시 파탄에 이르렀다(참조. 최형묵, “박근혜 정권 탄생의 동학 - 기억의 정치와 헤게모니 전략을 중심으로”, 《시대와민중신학》12[2013.12.]). 그 실패로 국민의 고통은 가중되었지만, 그 신화의 미망에서 깨어나게 된 것은 다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극단적인 자본주의적 폐해를 겪고 있는 한국 사회의 기원이 어디에서 비롯되고 있는지 깨닫고 그것을 넘어서는 길을 찾는 것이 오늘 중대한 과제 가운데 하나이다.
셋째, 오늘 촛불정국은 분단 이래 지속되어 친미 반공주의의 청산을 요구하고 있다. 분단 이후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진영에 속해 있는 것이 경제 발전의 한 배경이 되었을 수도 있으나, 그로 인한 폐해 또한 크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분단체제하에서 반공주의는 국가안보를 내세운 권위주의 통치의 구실이 되었고, 그 가운데서 양심과 사상,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었다. 일방적 친미 지향은 국가 주권의 존재 자체를 의심케 만들기도 하였으며, 남북관계와 동아시아 질서 안에서 대한민국의 주도적 역할을 저해하고 있다. 오늘 촛불정국에서 사드 배치 문제가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는 한편 기존의 종북 패러다임이 통하지 않고 있는 점은 그 강고했던 체제의 균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체제를 극복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임을 확인해주고 있다.
거시적 맥락에서 보자면, 자생적 근대화에 실패하고 식민지와 분단을 겪으면서 누적되어 온 한국 사회의 적폐를 청산해야 하는 과제 앞에 지금 우리가 서 있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100년 넘게 지속되어 온 국권 및 민권의 쟁취 여정의 도도한 물결 한 가운데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1862년 임술년 농민봉기(진주민란), 1894년 동학농민혁명, 1898년 만민공동회, 1910년 한일강제병합전후의 의병봉기, 1919년 3.1운동(민족ㆍ민주혁명 / 민권에 기초한 국권 회복 운동), 이어 최초로 민주공화국을 선포한 임시정부와 독립전쟁, 1960년 4.19혁명, 1964년 한일협정반대운동, 1970년대 민주화운동, 1980년 광주항쟁, 1987년 민주화항쟁, 그리고 오늘의 항쟁... 그 대열 가운데 우리가 있다.
그 도도한 대열의 의미를 한마디로 집약하면 민중의 정당한 권리를 쟁취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민중이 정당한 권리의 주체가 되어 새롭게 만드는 나라, 새롭게 만드는 국제질서와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계를 향한 대의를 부여받고 있다.


3. 민중 기본권의 요체와 그 신학적 의의 - 지향해야 할 기본 가치

1)
“망각은 노예의 길이지만, 기억은 구원의 신비이다.” 이스라엘의 홀로코스트 기념관 ‘야드 바셈’에 새겨진 경구이다. ‘야드 바셈’은 히브리어로 ‘이름을 기억하라’라는 뜻을 지닌 것으로, 이사야 56:5에 근거를 두고 있다. “나를 기쁘게 하는 일을 하고, 나의 언약을 철저히 지키면, 그들의 이름이 나의 성전과 나의 백성 사이에서 영원히 기억되도록 하겠다.”
이 경구를 새삼 떠올린 것은, 새로운 나라 만들기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기억을 끊임없이 불러내고 그 뜻을 이루고자 하는 지난한 과정이라는 것을 새기고자 함이다. 바로 앞에서 이미 말했지만, 오늘의 촛불광장이 돌발적 현상이 아니라 거대한 역사적 물줄기에 잇대어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 거대한 역사적 물줄기가 갖는 의미가 무엇일까? 그것은 줄여 말하건대, 민권[인권]을 바탕으로 하는 국권[주권]의 확립과정이라 할 수 있다.
1975년 3.1절 강연에서 안병무 선생이 <민족ㆍ민중ㆍ교회>에서 “우리 역사에서 민족은 있어도 민중은 없다.”고 했을 때, 그 진의는 엄연히 민중이 실재함에도 불구하고 민중의 정당한 권리가 찬탈당해 온 역사를 환기하는 데 있었다. 사실상 민중신학의 탄생을 알린 그 강연에서 안병무 선생은 동학혁명과 3.1운동, 그리고 4.19혁명의 정신을 되새기는 가운데 “민중이 민족을 형성하고 그것을 지킬 대권을 정부에 맡”긴 것이라 집약하고, 그 전제하에 교회의 과제를 밝혔다. 실재하는 민중을 바탕으로 민족, 그리고 그것을 지켜야 할 의무를 지닌 국가의 관계를 전제한 이 통찰은 한 신학자의 단순한 통찰이 아니라 역사적 기억을 되새기는 가운데 내놓은 빛나는 통찰이었다.
오늘 우리가 참여하고 있는 촛불광장과 급박한 정국의 한복판에서 새로운 나라 만들기가 갖는 의의를 조명하는 것도 그와 같은 통찰의 연속선상에 있다. 그 통찰에 힘입어 새로운 나라 만들기의 핵심 요체가 민중의 기본권을 어떻게 확보하고 심화시킬 것인가 하는 데 있다는 것을 확인하며 민중 기본권의 요체를 확인하고 그 신학적 의의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 서남동 선생의 “두 이야기의 합류”: 오늘의 실천에 지혜를 던져주는 두 가지 역사적 유산 - 한국 민중운동의 전통 / 성서의 민중전통.

2)
그 과제에 접근하기 위하여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체를 밝히고 있는 헌법의 전문을 먼저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헌법 전문을 새삼 살펴보는 것은, 1948년 제정된 헌법이 역사적 맥락과 무관하게 형식적으로 부여된 것이 아니라 자생적 기원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민중의 권리를 보장하는 민주주의의 역사가 해방후 미군정에 의해 시작된 것이 아니라 오랜 기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 헌법의 모체가 되는 제헌 헌법은 그저 이식된 것이거나 모방된 것에 지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친 민족ㆍ민중운동을 통한 역사적 산물이었고 그것은 기본적으로 진취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민주공화제, 국민주권, 권력분립이라는 근대 입헌주의의 핵심 원리를 균형있게 함축).
현재 헌법 전문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강조하고 있지만, 애초 제헌 헌법이 처음부터 ‘자유주의’ 이념에만 입각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제헌 헌법은 ‘평등주의’ 이념의 요소를 근간으로 하고 있었다. 그것은 민족ㆍ민중운동의 산물(* 예컨대 조소앙의 ‘삼균주의’: 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이자 동시에 해방정국에서의 국민적 합의에 기초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945년 김재준 목사의 <기독교의 건국이념 - 국가 구성의 최고 이성과 그 현실성>; 그리고 1946년 미군정의 여론조사 결과 참조).
이후 분단체제하에서 친미 반공주의 및 일방적 경제 성장주의와 정치적 권위주의 일변도로 치닫는 가운데 왜곡된 헌정의 역사는 1987년 민주화항쟁으로 정상화의 과정으로 회복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의 시점에서 볼 때 그나마 한계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 만큼 새롭게 나라를 구성해야 하는 과제와 이를 위한 헌정의 확립이라는 과제를 부여받고 있다.

3)
국가의 전면적 재구성을 위한 기초는 무엇보다 민중의 정당한 기본권을 확장하고 심화하는 데 있음을 이미 앞에서 밝혔다. 오늘 우리의 주제가 표방하고 있는 “국민주권 시대”라는 개념은 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사실 이 개념은 오늘날 세계적 차원에서 제기되는 매우 중요한 논쟁점을 함축하고 있다. 이른바 ‘인권’과 ‘주권’의 상호관계에 관한 쟁점이다. 말 그대로 하자면 ‘인권’은 개인의 권리를 뜻하고, ‘주권’은 국가의 권리를 뜻한다. “민중의 기본권을 바탕으로 하는 국가”에 대한 인식은, 국가 구성원의 정당한 권리 보장에 기초한 국가 주권의 확립을 지향하는 것을 뜻한다. 오늘날 국제적 차원에서 ‘인권’이 먼저냐 ‘주권’이 먼저냐 하는 첨예한 논란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인권을 바탕으로 하는 주권 확립은 보편적 공감대를 갖는 기본 방향이라 할 수 있다. 바로 그 점에서 오늘날 보편적 인권의 확립과정과 그 요체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모든 인간이 존엄한 존재로서 평등하게 존중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인간적 이상으로서 인권의 개념은 근대 서구의 정치적 혁명과 함께 등장하여 고대 민주주의의 이념을 근대 민주주의 이념으로 발전시키는 데서 핵심적인 다리 역할을 했다. 인간들 상호간에 지킬 수 있을 때 비로소 실효성을 갖는 인간 존엄의 원칙으로서 인권은, 집합적 정치적 주체로서 동등한 관계를 형성하고자 하는 민주적인 정치 공동체의 핵심적인 구성원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은 내적으로 필연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고, 여기서 인권은 민주주의를 확장하는 가치규범으로서 역할을 한다. 현실의 제도로서 민주주의는 언제나 완벽할 수 없는 결함을 내장하고 있다. 예컨대 집합적인 정치적 주체를 적법하게 인정하는 제도는 그 구성원의 자격을 규정함으로써 동시에 그 구성원에서 배제당하거나 무시당하는 존재를 발생시킨다. 여기에서 특정한 정치 공동체의 성원 내지는 시민의 권리와 모든 인간이 인간으로서 가지는 보편적 권리로서 인권의 대립이 발생한다. 인권은 항상 이 지점에서 제기된다. 배제당하고 무시당하는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에 대한 요구로서 인권이 제기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인권은 현실에 존재하는 부당함을 드러내주며, 이 때 인권은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없는 사람들의 권리가 된다. 특정한 정치적 주체의 권리에 대항하여 모든 인간의 권리로서 제기되는 인권은 그 자체로서 보편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여기서 그 인권이 스스로 보편성을 자임한다고 해서 그것이 허구인 것은 아니다.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요구로 제기되는 인권은 기존의 특수한 집단의 권리를 옹호하는 사회적 관계의 재편을 요구하고 따라서 실질적인 힘으로 작용한다. 바로 이 점에서 보편적 인권에의 요구는 현실의 변화를 추동하는 규범적 효능을 갖고 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권 개념은 대략 세 가지 단계를 거치면서 구체성을 확보해 왔다.
제1세대 인권에 해당하는 자유권, 즉 시민적ㆍ정치적 권리로서 인권은 서구 계몽주의의 유산으로서, 봉건적 체제에 대항하는 시민의 정치적 자유를 기본 내용으로 한다. 개인의 생명권, 종교와 의사표현의 자유, 참정권 그리고 재산권 등이 그 구체적 내용에 해당한다. 주권재민의 원칙도 이러한 권리의 쟁취 과정에서 형성되었다.  
제2세대 인권에 해당하는 사회권, 즉 경제적ㆍ사회적 권리로서의 인권의 확장은 19세기 산업혁명과 노동운동의 성장으로 이뤄졌다. 계몽주의 이래 자유주의적 인권의 범주에서 배제되었던 무산계급, 곧 노동계급은 자신들의 정치적 발언권이 없이는 자본가계급과 노동계급 사이의 격차를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정치적 권리를 주장하며 운동을 펼쳤다. 이로부터 자유를 실질적으로 누릴 수 있는 사회적ㆍ물질적 조건의 보장을 요구하는 경제적ㆍ사회적 권리 의식이 형성되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존엄한 사회적 삶을 평균적으로 영위하기 위한 생존과 생활 수단을 확보하는 데 그 핵심이 있다. 경제적 평등, 제반 노동의 권리, 교육의 권리, 어린이 및 청소년 복지, 기타 사회복지 권리 등이 그 구체적 내용에 해당한다.
제3세대 인권은 문화적 및 연대의 권리로서, 그것은 애초 소수 민족의 자결권에 대한 요구에서 비롯되어 오늘날 보다 광범위한 소수집단들, 예컨대 소수 인종, 원주민의 권리에 대한 요구들을 함축하게 되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소수집단의 권리를 옹호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정당성에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한편으로 오늘의 인권의식의 확장과정에서 그 적용 범위가 확대되면서 문화적 상대주의 논의를 불러일으키는 쟁점을 안고 있다.
오늘날 시민적ㆍ정치적 권리로서 인권과 사회적ㆍ경제적 권리로서 인권은 물론이거니와 논란 중에 있는 문화적 권리 또한 국제적으로 보편적 인권 개념의 필수적인 요소로 간주되고 있다. 특별히 1948년 국제연합(UN)의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된 이래 세계적 차원에서 인권은 보편적 규범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4)
기독교 신학이 근대 역사에서 등장한 인권의 가치를 처음부터 곧바로 수용하기는 쉽지 않았다. 특히 가톨릭의 입장에서는 프랑스혁명 등 반종교적 성격을 띤 근대의 정치적 혁명과 그로부터 제기된 근대적 가치들을 선뜻 인정하기 더더욱 어려웠다. 종교개혁이 결과적으로 근대적 인권의 지평을 여는 데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개신교 역시 근대적 정치혁명을 통해 등장한 세속적 인권 개념을 곧바로 수용하지는 않았다. 프랑스혁명이 유럽 전역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환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어진 공포정치와 나폴레옹의 지배 현상은 혁명과 그 가치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켰다. 기독교의 입장에서 그 현상은 하느님에 대항하는 자율정신의 오만한 반역의 결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프랑스혁명의 어두운 일면 때문에 그로부터 제기된 인권의 가치가 전적으로 부정당할 수는 없었다. 기독교적 배경을 가진 많은 계몽사상가들의 영향으로 기독교 신학은 점차 인권 등 근대적 가치들에서 적극적인 의미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가톨릭과 개신교를 통틀어 기독교의 입장에서 인권에 대한 태도가 결정적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독일의 나치 국가 및 소련의 스탈린 국가의 반교회적ㆍ반인권적 경험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기독교가 인권의 문제를 중요한 신학적 문제로 인식한 것은 세계적 차원에서 인권 규범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결국 국제연합주도의 <세계인권선언>이 이뤄지게 된 것과 같은 배경에서였다. 에큐메니칼운동 진영을 중심으로 인권에 대한 신학적 성찰이 이뤄지기 시작한 이래 오늘날 기독교 신학에서 인권은 더 이상 신학적으로 회피할 수 없는 핵심적인 주제로 인정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오늘날 한국 교회 평균적인 기독교인들의 의식 세계 안에서 인권에 대한 인식은 사실상 불모지대에 가깝다. ‘하느님의 주권’이 ‘인권’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다. 국가 ‘주권’에 대해서는 그것이 하느님의 주권을 대리한다는 전근대적 믿음에 여전히 의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가이사의 것과 하느님의 것을 구분하는 성구(마태복음 22:15~22)와 권위에 대한 복종을 말하는 성구(로마서 13:1~7)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되고 있을 뿐이다. 가이사의 것에 골몰하는 사람들 앞에서 하느님의 것을 제시한 취지, 사람들의 안전과 공공성의 보장을 위한 통치기관의 역할을 강조한 뜻은 안중에 없다.
신학적 입장에서 볼 때 ‘하느님의 주권’은, 오늘날 제기되는 사람들의 ‘인권’ 및 국가의 ‘주권’에 대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성서가 전하는 바를 따르면, 하느님의 주권은 그 백성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하는 근거가 되며, 따라서 그것은 국가 권력의 남용을 견제하는 근거가 된다(* 이하 예시 참조; 자세한 내용은 최형묵, 『한국 근대화에 대한 기독교윤리적 평가』, 한울, 2015, 94-112 참조).      
* 성서적 전거들:
(1) 보편적 인권과 관련하여 - 창조 이야기의 ‘하느님의 형상’, 하느님과 인간의 계약(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하느님), 성육신 사건, 인의론(認義論).
(2) 자유권과 관련하여 - 하느님의 주권과 평등주의 공동체, 하느님의 나라,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
(3) 사회권과 관련하여 - 하느님의 정의, 각종 법전의 정신, 예언자의 선포, 만나 이야기, 주기도문, 포도원 주인 비유, 최후 심판 비유 등.  

5)
한국 사회에서는 식민지로부터 해방된 후 1948년 정부수립과 함께 보편적 인권의 규범이 헌법을 통해 확립되었다. 자유권에 해당하는 시민적ㆍ정치적 권리로서 인권의 규범은 물론 사회권에 해당하는 사회적ㆍ경제적 권리로서 인권의 규범 역시 헌법으로 보장되었다(이익균점권 포함). 또한 사회적ㆍ경제적 권리의 핵심적 내용을 규정하는 노동관계 규범 역시 1953년 여러 노동관계법이 제정되면서 공인되었다. 한국전쟁의 와중이었던 1953년 1월 노동조합법, 노동위원회법, 노동쟁의법이 제정되었고, 같은 해 4월에 근로기준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률들은 1948년 제정된 헌법과 함께 결사의 자유,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등 노동3권을 보장한 매우 진취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인 헌정이 이뤄지지 않은 까닭에 헌법상으로 보장된 인권의 규범은 사실상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 사회에서 인권의 규범이 내재적인 요구로 가시화된 것은 경제개발의 본격화와 더불어 정치적 권위주의의 가속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벌어진 인권유린의 현실에서 민중이 자각한 데서부터 비롯되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오늘날 보편적 인권규범이 확립되기까지는 그 역사적 계기와 주체 면에서 일정한 단절의 계기를 안고 있다. 서구사회에서 시민적ㆍ정치적 권리로서 인권 즉 자유권은 부르주아의 등장과 함께 형성된 반면 사회적ㆍ경제적 권리 즉 사회권은 자본주의적 산업화의 본격화로 성장한 노동계급의 등장과 함께 형성되었다. 서구적 맥락에서 인권의 규범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민주주의를 연 것은 부르주아의 몫이었다. “부르주아 없이 민주주의는 없다”는 베링턴 무어의 명제는 바로 그 현실을 두고 한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열린 민주주의가 부르주아만의 민주주의에 한정되고, 그 안에서 보장된 인권이 마르크스의 지적대로 사실상 부르주아 시민의 사적 권리에 지나지 않은 것이 되었을 때, 노동계급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자유권의 한계를 뛰어넘는 사회권을 요구하게 되었고 그것이 결국 오늘날 인권의 지평을 확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와 달리 한국 사회에서는 인권의 규범을 제기하고 민주주의를 여는 데서 부르주아계급은 사실상 기여한 바가 없다. 국가주도의 경제개발과정에서 국가권력의 후견하에 성장한 한국의 부르주아계급은 권위주의적 국가권력의 동맹세력으로서 역할을 하였을 뿐이다. 따라서 서구사회에서 부르주아 시민계급의 과제의 핵심이 되는 자유권과 노동계급의 생존권을 핵심으로 하는 사회권 및 집단적 권리의 제기는, 한국사회의 경우 사실상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민중세력의 몫으로 부과되었다. 1970-80년대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인권운동이 줄곧 민중운동으로 불리게 된 사연이 여기에 있다. 단적으로 말해 오늘 세계적 차원에서 보편적 인권의 규범으로 확립된 권리들에 대한 요구가 한국 사회에서는 민중세력에 의해 제기된 것이다. 이 사실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 민주주의의 보수적 성격과 낙후된 인권 현실을 해명해주는 요인인 동시에 정반대로 민중운동에 부과된 과제의 중요성을 확인해 주고 있는 요인이다.

6)
오늘 우리 현실에서 인권의 요구는 여전히 중요한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물론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비해 오늘 절차적 민주주의의 진전으로 국가권력의 직접적 폭력에 의한 인권유린의 현상이 완화된 것은 사실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대표적 실례들에 해당하는 사건들에 대한 재심이 이뤄지고 그 당사자들이 무죄판결을 받은 사실은 오늘 우리 사회에서 인권보장의 진전을 나타내주는 매우 중요한 지표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 권력의 의지에 따라 그마저 얼마든지 무력화될 수 있다는 것을 지금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또한 민중의 생존권적 요구, 사회권의 보장은 질적으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경제민주화(노동과 자본의 균형을 핵심으로 하는)가 지지부진한 상태에 있거니와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보장은 여전히 불완전한 과제로 남아 있다. 헌법과 노동관계 법 등에서 노동자들의 인간 존엄을 위한 생존권적 필수요건으로서 노동3권이 엄연히 보장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단체행동을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거나 경영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법적 책임을 물음으로써 사실상 단체행동을 금지시키고 있는 현실은 오늘 우리 사회의 취약한 노동권 보장의 현실을 말해 주고 있다.
* 명실상부한 국민주권을 실현할 수 있는 통치구조: 권력의 분립과 견제, 가능한 한 직접 민주제의 반영, 국민 대표권의 왜곡을 방지하는 선거제도 등.  
* 강화되어야 할 기본권: 사상과 양심의 자유, 집회 및 시위의 자유 완전한 보장, 참정권의 확대(예, 선거연령 하향), 국민소환, 사법영역에 대한 국민 참여와 견제, 노동권의 실질적 보장과 강화, 경제민주화 실현, 인간다운 삶을 위한 국민청구, 차별금지, 헌법 파괴자에 대한 처벌과 권리 제한 등.    


4. 한국 교회의 역할 - 맺는 말

오늘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촛불은, 최고 권력자의 무능과 비리를 겨냥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야말로 한국 사회에 누적되어 온 적폐를 청산하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단지 위임된 통치자를 바꾸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국 사회 자체를 전면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을 뜻한다.
한국 교회는 그러한 한국 사회의 요구를 제대로 알아차리고 그 요구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비상한 정치적 국면에서 정치적 행동에 나서는 것은 물론 일상적 삶의 차원에서 고질적 병폐를 극복할 수 있는 사회적 실천을 지속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교회는 사회를 향하여 요구하는 과제들을 스스로 선취해야 한다. 그것은 일상적 차원에서 끊임없는 신학적 계몽과 교회생활의 변화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 교회의 강단이 변화되어야 하고, 직제와 의사결정 구조, 교회생활 문화가 변화되어야 한다. 한 예로 한국 교회는 오늘날 사회적으로 비판적 검토대상이 되고 있는 대의제보다 더 낙후된 대표제도와 의사결정 구조를 갖고 있다. 암만 교회의 특수성을 강조한다 하더라도 그런 교회가 사회를 향해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민중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아이러니일 수도 있다.
특별히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 종교개혁의 의미를 새삼 새기며 한국 교회가 거듭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거듭난 교회는 교회 그 자체로서 의미가 클 뿐 아니라 더불어 건강한 한국 사회를 떠받치는 중요한 한 기둥이 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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