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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논문/강의 | 시론 | 단상 | 기타 |
[서평] 군종제도라는 사회적 공통과제
 최형묵    | 분류 : 기타 | 2017·11·15 08:33 | HIT : 101 |
*『창작과비평』2017년 겨울호 서평: 강인철 『종교와 군대』, 현실문화 2017

군종제도라는 사회적 공통과제

최형묵 崔亨黙

2017년 여름 ‘공관병 갑질’로 유명해진 박찬주 대장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그가 2016년 한 집회에서 ‘기독교국가’ 운운한 발언이 확인되면서 빈축을 샀다. 그는 이른바 ‘초코파이 전도’를 통해 매년 군에 입대하는 20만명 중 14만명에게 세례를 주고, 이들이 전역 후에 각기 4인 가정을 이루게 되면, 2035년 즈음에는 전 국민의 75%에 해당하는 3700만명이 개신교인이 되는 ‘기독교국가’가 이뤄질 것이라 주장했다. 때마침 지탄받고 있는 ‘갑질’ 장본인의 발언이었던 탓에 더 격한 빈축을 사긴 했지만, 공인이 공공연하게 그와 같은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이 우리사회의 상황임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 발언은 이른바 ‘황금어장’의 신화에 기대고 있으며, 그 신화는 국가적 차원에서 합법화되어 있는 군종제도에서 비롯된다. 군종제도는 그에 참여하고 있는 종단들에 포교의 기대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황금어장’으로 활용되고 있고, 또한 동시에 그에 참여하지 못한 종파들에는 선망의 대상이 되는 ‘특권지대’로 자리하고 있다.

기원을 따지면 무려 1600년 이상의 장구한 역사를 지닌 오랜 제도로서 군종제도는 애초 승전기원과 긴밀히 관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근대 시민혁명 이후 정교분리 원칙하의 현대 군종제도는 군인들의 종교자유를 보장하는 유효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그 근거를 갖게 되었고, 오늘날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시행되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국을 모방하여 형성된 한국의 군종제도는 그리스도교(개신교, 천주교) 독점체제로 운영되다가 나중에 불교(조계종), 최근에는 원불교가 참여하게 되었다. 다종교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종파만이 참여하고 있는 특권적 제도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그 효과는 해방직후 불교·천도교·유교·대종교·개신교 등 5대 종교가 팽팽하게 경합하던 데서 1960년대 이후 불교·개신교·천주교의 3대 종교 중심으로 재편된 종교지형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언뜻 보기에 군종제도 문제는 그 이해당사자들만의 특수한 관심사인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일반 시민사회나 학계에서는 거의 진지한 성찰의 대상이 되고 있지 않다. 저자는 한편의 뜨거운 관심과 한편의 차가운 무관심이라는 양극단의 상황 가운데서 군종제도가 어째서 우리 사회 공통의 관심사가 되어야 하는지를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그것은 군대 내부의 한 제도이거나 종교와 군대의 관계로만 한정되지 않고 종교와 국가의 관계에서 중요한 함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에 대한 접근방법으로 비교연구, 조직-제도적 접근, 평화학적 지향을 제시한다.
먼저 비교연구를 통해, 저자는 미국의 군종제도를 그대로 모방한 한국의 군종제도가 창립초기 동질화의 국면을 거쳐 1970년대 이후 이질화의 국면으로 전환한 과정을 분석한다. 베트남전쟁 중 미국에서는 그 전쟁의 정당성 여부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가운데 군종의 역할을 재정립하고자 하는 시도가 일었지만, 한국에서는 그 전쟁이 반공주의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 가운데서 군종의 역할이 ‘신앙전력화’의 한 수단으로써만 강조된 데서 이질화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조직-제도적 접근은, 직업적 현역군인들로 구성되는 군종들이 자신들만의 고유한 조직적·제도적 이익을 발전시키는 경향을 주목한 것이다. 여기에는 매우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고 따라서 그 효과도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지만, 그 가운데 군종제도가 정교유착의 중요한 고리가 되고 있다는 것은 쉽게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방법론으로서 평화학적 지향은, 전쟁을 정당화하는 신학을 넘어 ‘정의로운 평화’를 지향하는 오늘의 신학적 추세 속에서 군종의 역할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것을 뜻한다. 현대의 군종제도 근거 자체가 전승기원에 있지 않고 군인의 종교자유를 보장하는 데 있다면, 마땅히 군종은 그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을 근거로 그 역할을 조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평화적 가치관에 입각하여 군대 내에서의 인권신장과 장병의 보호 등에 관한 과제 등으로 구체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오늘의 한국에서 매우 현실적인 의의를 갖는다.

이와 같은 방법론에 따라 한국의 군종제도에 접근할 때 과연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군종제도는 ‘도구주의’에 따른 전반적인 ‘무성찰성’이 압도하고 있는 형국이다. 저자는 이로 인해 나타나는 문제로 교세확장 수단으로서의 군종, 종교적 특권과 정치적 이득의 강화, 종교 간의 경쟁과 갈등, 군종의 군대 대변인 역할과 정교유착 현상을 주목한다.
군종제도가 야기하는 문제점들을 극복하기 위해 저자는 몇가지 중요한 과제들을 제시한다. 현대적 군종제도의 취지에 따른 종교의 자유와 차별의 문제, 정교분리의 문제, 그리고 신학적 딜레마로서 평화주의의 도전, 그리고 윤리적 딜레마의 문제 등이 그것이다.
종교의 자유와 차별의 측면에서 보자면 한국의 군종제도는 그 참여 교단이 애초부터 제한되어 있는 까닭에 소수 종파에 속하는 장병들의 종교자유권이 제한되어 차별적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장병들의 종교시설 접근권과 동시에 민간인 성직자의 군부대 접근권이 보장되어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지휘관의 임의적 재량권에 맡겨져 있는 상태라 근본적 해결이 어려운 상태이다.        
정교분리의 측면에서 보면, 직업적 현역군인들로 구성된 한국의 군종제도는 심각한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예컨대 특정 종교단체와 종교인에 대해 국가 재정을 지원하는 것, 현역장교 신분을 전제로 국가 또는 군대가 종교인을 특정 제도에 가두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하는 근본적 이의제기가 있을 수 있으며, 여기에 더하여 ‘전군신자화’ 등과 같은 형태로 병사들에게 신앙을 강요하는 것까지 포함하면 그 이의제기는 더욱 타당성을 지닐 수 있게 된다.
신학적 딜레마로서 평화주의의 도전 문제는, 오늘날 어떠한 형태이든 전쟁의 정당성을 부인하고 ‘정의로운 평화’를 지향하는 신학적 추세 가운데서 군종의 역할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지 하는 물음을 함축한다.  
윤리적 딜레마의 문제는 신학적 딜레마의 문제와 직결된 것으로, 전쟁 중이거나 평상시 군대에 의해 또는 군대 내부에서 발생하는 비인도적 사태나 인권침해의 경우 과연 군종은 어떤 역할을 맡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한국전쟁이나 베트남전쟁 중 비인도적 사태에 군종장교들이 어떤 대처를 했는지 알려진 바 없으며, 또한 최근 병영 내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 현상에 대해서도 군종장교들이 의미 있는 대응을 한 사례 역시 알려진 바 없다. 양심적 병역거부, 또는 군대 내에서의 양심선언, 최근 동성애 문제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안들에 대해서도 이렇다 할 대응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군종제도가 군대에 철저하게 영합되어 있는 조건에서 군종이 ‘도덕 옹호자’로서 보다는 ‘사기 증진자’ 역할에 머물고 있는 한 군종 내부에서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성찰은 적절하게 이뤄질 수 없다고 할 것이다. 저자는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시행되고 있는 군종제도의 다양한 형태를 주목하면서, 가능한 한 군종의 ‘탈군대화/민간화’를 지향하는 것을 그 대안으로 제시한다.

저자의 논지에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한가지 의문이 드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저자가 방법론의 차원에서, 또한 성찰의 과제를 제시하는 대목에서 강조하고 있는 평화주의 신학의 문제는 사실 좀더 면밀한 검토를 요하는 것으로 보인다. 군종제도에 참여하고 있는 교단들이 기본적으로 평화주의를 전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그 교단의 입장과 군종의 태도 사이의 갈등 소지를 강조한 저자의 입장이 하나의 현실적 판단으로 적합한지 의문이다. 예컨대 어떤 형태이든 전쟁의 정당성을 부인하는 ‘정의로운 평화’ 개념을 흔쾌히 내재화한 교단이 얼마나 될까? 유감스럽게도 한국 종교 현실에서 그에 대한 답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군종제도가 군대체제에 영합되어 있기에 발생하는 문제 이전에 한국 종교들의 평화주의 수용 문제에 대해 좀더 냉철한 평가가 부연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러한 지적이, 이 저작이 이해당사자들 또는 소수 연구자들만의 관심 사안으로 머물러 있는 주제를 일반 학계와 시민사회 공통의 관심사로 제시하고 있는 역작이라는 이 책에 대한 평가를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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