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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権力を志向する韓国のキリスト教>(日本語版) 書評[번역문 첨부]
 최형묵    | 분류 :   | 2013·08·17 09:16 | HIT : 2,095 |
Review201309_s.pdf (1.98 MB), Down : 140
2013_08_7.pdf (1.15 MB), Down : 139
<権力を志向する韓国のキリスト教>(日本語版)에 대한 書評들이 연달아 나와서, 과분한 영광을 누리고 있습니다.

첫번째 것은, 지난 번 일본 방문 때 인사드린 적이 있는 후카다 미키오(深田未来生) 선생의 서평으로, 일본의 기독교계 서평전문지 『本のひろば』2013년 8월호에 실렸습니다.

『本のひろば』2013년 8월호

두번째 것은,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없지만 洛雲海(나그네)라는 필명을 가진 분(한국 장신대에 파송된 일본선교사)이 최근 일본에서 출간된 한국 기독교에 관한 대조적인/대극적인 두 책을 비교 서평한 것으로, 『福音と世界』2013年9月号에 실렸습니다.  

『福音と世界』2013年9月号

*** 번역문 ***

1. 한국 교회에 있어서 기독교 신앙을 묻는다

崔亨黙 / 金忠一 譯,『権力を志向する韓国のキリスト教』(권력을 지향하는 한국 기독교)(東京: 新敎出版社, 2013) 서평

深田未来生(후카다 미키오, 同志社大学 名誉教授)

깊은 생각을 하게 하는 한 권의 책을 손에 넣었다. ‘작은 알(小粒)’인데 얼얼하게 마음을 자극하면서 독자 자신의 발자취와 서 있는 자리를 생각하게 만든다. 일본 교회에 몸을 두고 살아온 사람에게 있어서 이 자극은 매우 귀중하다. 자극뿐만 아니라 떠올리는 한국 기독교와 교회 묘사는 우리들이 그것에 대해 물리기 쉬운 표면적인 이미지를 다시 묻게 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통계적으로 보면 일본 기독교는 적어도 최근 반세기, 결코 획기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목사와 신도가 진지하고 성실하게 전도・선교 사역을 담당하고, 세속화가 침투해가는 사회 속에서 신앙을 실체화하고자 노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하다는 것이다. 청년들의 모습이 교회에서 보기 어려운 것은 일본에 한정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청년에게 살아가는 의미를 신선하게 지시할 수 없는 교회에게 미래는 없다. 이 과제도 반복해서 질문을 던지고, 토론하고, 방책도 내세워 온 것이지만 성과는 보이지 않는다.
이른바 ‘건강한 교회’도 존재하고 청년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그룹도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활기가 일본 기독교에 넘친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시선을 이웃나라 한국을 향하면 양상은 매우 다르다. 서울의 주일은 교회로 향해 서두르는 많은 사람들로 활기 차 있다. 메가 처치라고 불리는 대규모 교회에 한정된 것만은 아니며, 많은 교회의 예배는 회중으로 가득하고, 소리 높이 부르는 찬송가는 창문 유리를 흔든다. 헌금의 액수를 들은 일본 그리스도인은 숫자를 적게 잘못 들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일본에서의 방문자는 선망의 눈길로 한국 교회를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표면적 인상은 전면적으로 보면 부정확하거나 무의미하거나 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한국 기독교로부터 배울 것이 많은 것 같이 생각해 왔다. 내가 손에 넣은 최형묵 목사의 한국인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역사적 자기분석과 그것을 기반으로 하는 도정을 도전하는 ‘대안’은 참된 배움을 주는 유효한 텍스트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서의 ‘대안’은 ‘제언’이라고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최 목사의 활동현장인 한국의 교회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나는 최 목사와의 면식은 없다. 본 저의 마지막 부분에 기재되어 있는 저자 약력을 통해 그 인품을 상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최씨의 사상이나 신앙의 확실함은 의심할 여지가 없고, 그의 주장의 전개 가운데 밝혀져 있다. 그리고 근저에 있는 한국 기독교에 대한 사랑과,  그러하여야 할 모습으로 그려내지는 교회에 대한 강한 사명감이 보인다. 1961년생으로 왕성히 일할 중견청년목사라고 말할 수 있다.
전개하고 있는 한국 교회 성장 단계의 모습은 일본과 비교해서 반드시 독특(unique)하다고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한국의 문화나 정치적 환경이나 상황의 요소가 그 특색으로 나타나 오늘 우리들이 보는 한국 교회의 모습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 선명하다. 그것을 저자는 ‘권력을 지향하다’라고 표현하고, 몇 가지의 원인을 밝히고 있다.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들은 기독교 신앙과 그 표현에 있어서의 우선사항(priority)에 대한 과제들이다. 숫자의 증가나 정치적, 사회적 ‘은혜’에 능하고, 복음의 본질에 진실한 실체로서의 교회는 어떠하여야 할까. 본 저는 한국의 역사적 발걸음과 현상을 근거로 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어떤 공동체를 목표로 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묻고 있다. 힘든 부분도 있지만, 거기에는 확실한 희망의 빛이 비쳐지는 것을 독자는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희망의 도정을 시야에 두고, 저자는 결코 쉽지 않은 역사의 비판적 전개를 시도한다. 운동으로서의 초기 기독교로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는 직제의 전개 등도 분석 대상으로 엄격한 ‘해부’에 노출되어 있다. 이 부분은 보편적 통찰로서 일본의 기독교에 적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본 저의 큰 가치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이다.
한국과 일본의 기독교사와 교회의 모습 사이에는, 공통점과 명확한 상위점이 있다. 나는 이 한 권을 손에 넣고 떠오르는 생각은 일본측에서도 최 목사의 제언ㆍ대안과 짝(pair)이 될 수 있는 일본 상황을 과제로 한 분석과 전망이 제공될 것을 간절히 기원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 있다.

* 번역: 이상경(재일대한기독교회 서부지방회 목사)
* 이 글은 일본의 월간 기독교 서평지『本のひろば』667호(2013년 8월)에 수록된 것을 번역한 것이다.


2. 일본에서 출간된 두 권의 한국 기독교 관련 책에 대한 비교서평

崔亨黙 / 金忠一 譯,『権力を志向する韓国のキリスト教』(권력을 지향하는 한국 기독교)(東京: 新敎出版社, 2013): [한국어판] 최형묵, 『한국 기독교의 두 갈래 길』[개정증보판](서울: 이야기쟁이낙타, 2013); 鈴木崇巨, 『韓国はなぜキリスト教国になったか』(한국은 왜 기독교 국가가 되었는가)(東京: 春秋社, 2012).

洛雲海(낙운해, 일본기독교단 한국파견선교사, 한국・장로회신학대학교 조교수)

지금까지 일본 그리스도인의 관심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구미 기독교와 그 교회로 향하고 있었다. 이른바 기독교의 구미주의였던 것이다. 그 상황에서 큰 변화는 보이지 않지만, 최근 일본에도 동북아시아, 특히 한국 기독교와 그 교회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경향이 보이기 시작하였고, 이것을 소개한 저작도 나오게 되었다. 한국에 있으면서 그 선교현장에 몸담고 있는 일본인으로서 평자는 이 상황에 대하여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단지 즐거워할 수만은 없다. 출판된 책은 각각 독자적인 입장과 관점에서 분석과 설명을 시종일관하고 있기에, 이들 책 가운데 어느 하나를 읽었다고 해서 한국 기독교와 교회 전체상을 이해하였다고 말할 없기 때문이다. 평자가 아는 한국 기독교와 그 교회는 매우 다양하고 거대하며 폭이 넓기 때문이다.
그러한 가운데 그 신앙관에 있어서나, 교회관에 있어서, 또한 정치적・사회적 입장에 있어서 상당히 대조적인 책이 이어서 출판되었다. 스즈키 다카히로(鈴木崇巨)씨의 『한국은 왜 기독교 국가가 되었는가』(『韓国はなぜキリスト教国になったか』(東京: 春秋社, 2012)) (이하 <스즈한(鈴韓)>)과 최형묵씨의 『한국 기독교의 권력의 길 - 그 내부에서 바라보며 대안을 찾는다』(権力を志向する韓国のキリスト教ー内部からの対案)](이하 <최권 <崔權)>)이다. 두 저작을 한번 읽어본 사람은 누구나 한국 기독교와 그 교회에 대하여 양자의 견해 차이에 놀라움을 금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에 쌍방을 같이 읽으면, 그 전체상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두 저작은 모두 한국 기독교와 그 교회에 대한 분석과 평가를 통해, 한국 기독교 소개를 시도하고 있다. 그 언급 범위는, 한국의 역사, 정치, 군사, 사회, 경제, 문화, 종교, 교육, 예술과 더불어 기후와 민족기질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방면에 걸쳐 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한국 기독교계에 대한 양자의 평가는 대조적이다.
<스즈한>의 저자 스즈키 다카히로씨는 일본과 미국에서 40년간 목회한 후 현재는 하마마쯔(浜松)시 聖隷 크리스토퍼 대학(Seirei Christopher University) 교수로 연구와 교육에 종사하는 일본기독교단 목사로서, 이른바 복음파와 오순절계 보수적 교회와 교류가 있는 상당한 친한가(親韓家)이다. 스즈키씨는 그와 같은 일본인 그리스도인 입장에서, 일본 기독교에 소개되지 않은 까닭에 관심이 적은 일본인들을 염두에 두면서 한국과 한국인 그리고 한국 기독교회의 아름다움과 훌륭한 면을 가능한 독자에게 소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스즈한>은 풍부한 통계자료와 역사사료를 이용하여 한국이라는 나라와 그 사람들, 또한 한국 기독교계를 ‘밖에서’ 관찰분석하고, 그것을 호의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국은 훌륭한 나라이고, 한국인은 훌륭한 민족이다.”(208쪽)이라는 것을 전하고자 한 스즈키씨의 선의의 마음이 책 전반에 강하게 드러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이유 때문일까? 한국 기독교의 좋은 면을 너무 호의적으로 기술하고자 하였기에, 그 그림자와 부정적 측면에 해당하는 부분에 대하여 거의 언급하고 있지 않다.
<최권>의 저자 최형묵씨는 민중신학 연구자로서, 역사 있는 신학전문지 『신학사상』의 편집장과 『진보평론』의 편집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현재는 신학연구 및 교육과 함께 한국의 지방도시 천안에서 기존 교회에 대한 ‘대안적’ 교회라고 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 형성을 위해 노력하는 한국인 목사이다. 최씨는 이른바 진보적 그리스도인 입장에서 한국 기독교와 교회를 ‘안에서’ 관찰분석하고, 보수적인 체제인 교회 또는 주류에 속한 기독교와 그 교회의 문제점을 가차없이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이것을 철저히 비판하고, 그 비판과 위기감을 계기로 하여 현상 교회에 관한 대안을 제시하고, 한국 기독교계의 쇄신에 대하여 세상을 향해 강하게 호소하고 있다. 단지 호소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제시한 대안에 대하여 교회 현장에서 스스로 대처해가는 실천가이기도 하다.
스즈키씨과 최씨의 시점 차이를 크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즉, <스즈한>은 주로 신앙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보수적이고 다수를 점하고 있는 한국주류의 기독교와 교회에 주목하고 이것을 호의적으로 소개하는 것에 대하여 <최권>은 이러한 기독교 세력을 비판하고, 오히려 소수이면서도 한국에 있어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투쟁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한국 비주류 진보적 교회측에 서서, 그 교회가 현재도 의미있는 존재라고 옹호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권>은 한국 기독교교회뿐만 아니라, 세계 기독교교회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도전적인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하나의 정치신학적 저작이라는 관(觀)을 보이고 있고, 책 전체에서는 시대 체제에 부응하는 기독교와 그것에 속한 교회의 행적과 체질, 또 그 현상에 대하여 강한 노여움이 느껴진다. 그 자세를 열거하자면 반권력, 반권위주의, 반보수주의, 반현세주의, 반자본주의, 반현상유지적 사회적응지향, 반자기중심주의이고, 거기에 기독교에 대해서는 반대형주의, 반교회성장주의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반대로 뒤집으면, 사회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교회적으로도 친진보, 친비주류, 친소수, 친변혁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최권>은 단순히 한국 기독교 소개라고 하는 영역을 넘어, 그 변혁쇄신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는 의미로 신학적인 논고를 전개하고 있다. 그 전반에는 주로 한국 기독교에 관한 비판적 평가와 해설이었고, 후반에는 거기에 멈추지 않고, 비판과 평가의 근거가 되는 교회론(제3장 <대안을 향한 분투>)와 신앙론(제4장 <타자를 향한 개방성으로서의 신앙>)을 독자적인 시점에서 대안적으로 전개하기도 한다. 그 신학적 논고는 예배론과 교회직제론, 교회의 위계적 구조 비판에 관련된 교회의 건축양식론, 교회에서 사용되는 언어로서의 성서번역문제, 더욱이 평신도론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방면에 이른다. 기존 교회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예컨대 ‘교회구조 해체론’(131쪽)에 이르는 등 평자에게는 지나치다고 느낄 정도의 부분도 있다. 그러나 그 주장에 대하여 진지하게 귀 기울이면, 거기에는 우리의 교회에 대한 깊은 자성과 자기변혁을 촉구하는 지적과 제언이 적지 않게 들어 있다.
그러면, <스즈한>에 대하여 한 가지 점만 논하고자 한다. 본서의 저명 “왜 한국은 기독교국가가 되었는가”에 대한 물음이지만, 평자는 먼저 이 저명을 보고 놀랐다. 왜냐하면 평자는 한국이 기독교 국가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초 이것은 질문으로 성립 가능한 것인가. 이 질문 자체에 검토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당초 한 나라가 ‘기독교 국가’라고 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무엇을 기준으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신도수의 많음일까. 또는 그 비율일까. 그렇다고 해도 스즈키씨의 인용한 통계에 의하면, 한국 그리스도인 인구(가톨릭 포함)는 총인구의 35.7%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더구나 이 통계마저도 그대로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이것보다 밑도는 통계도 공표되어 있다(개신교 18.3%, 가톨릭 10.9%라고 하는 자료이다. 한국통계청, 2005년). 한국에서 길 가는 사람들에게 이 서명과 같은 질문을 던지면, 과연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물론, 서명이라고 하는 것이 약간 선풍적(sensational)이어야 세상의 관심을 끌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질문을 만드는 방법 자체에 문제가 있을 경우, 받은 답변의 정당성 여부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하여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도, 스즈키씨가 본서를 통해서 독특한 관점으로 이 질문에 몰두하고자 하였던 것에 대해서는 주목할 가치가 있다.
그렇다고 해도, 스즈키씨가 본서를 통해서 독특한 관점으로 이 질문에 몰두하고자 하였던 것에 대해서는 주목할 가치가 있다.
스즈키씨는 그 답으로 ① 기독교라고 하는 순수한 가르침(과 순수한 하나님)을 가진 종교가, 기독교라고 하는 순수한 가르침(과 순수한 하나님)을 가진 종교가, ② 순수한 마음을 가진 한국인의 민족성에 합치하여, ③ 박해와 순교의 역사 가운데 한국인과 만나고 사람들의 신뢰를 얻어내어 수용되었다는 것이라는 세 가지 요인을 든다(102쪽-112쪽, 강조는 평자에 의한 것. 기타 161쪽도 참조). 한국인과 기독교의 [순수함]을 열쇠로 하는 이 독특한 견해를 서명의 답변으로서가 아니고 ‘한국에 있어서 그리스도인 급증(또는 교회의 양적 급성장)의 이유’라고 간주할 경우, 이것은 다른 유례를 볼 수 없는 견해를 제공한 것으로 높이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거기에 주관적 색채가 진하게 녹아 있다고 하더라고 말이다.
한편 이 문제에 대해 최씨는 어떻게 답하고 있을까. 그의 견해는 스즈키씨의 그것과 전혀 다르다. 최씨는 그 결정적인 요인을 한국 기독교에 ‘뿌리 깊이 존재하는 구조적 현상’ 또는 ‘병폐’로 보고 있다. 즉, 그것은 한국 기독교가 권력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한국 근대화전략과 동맹관계를 맺은 것에 있고, 또한 한국 보수적 기독교에 있어서 복음화와는 상관없고, 신앙의 결과가 물질적 보상이라고 인식되어진 것, 그리고 세속적인 욕망을 정당화하는 신앙논리를 교회가 전개하였던 것(38쪽이하, 49, 51, 54쪽 등)에 있다고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선교사역을 감당하는 사람으로서, 또한 지금까지 일본 기독교회의 구미주의적 경향과 그 모습을 가슴아프게 생각한 일본인으로서 평자는 <스즈키한>과 <최권>이 출판된 것에 대하여 크게 환영하고 싶다. 이 두 책은 독자에게, 한국 기독교와 그 교회라고 하는 거상을 우측(보수)와 좌측(진보)에서 보게 하는 좋은 안내 역할을 할 것이다. 또한 우리들 자신의 교회의 모습을 자성하는 기회를 주기에 충분하다. 특히 <최권>이 제기한 여러 문제는 일본의 기독교계에 있어서도 널리 의논되어지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최권>의 역자 김충일씨의 번역에 대해서도 한 말씀드리고자 한다. 김씨의 번역은 언제나 그랬듯이 훌륭하고, 고도의 전문적 개념과 용어에 있어서도 적절한 일본어 로 번역이 되어 있어, 덕분에 본서의 내용상 이해가 용이하지 않은 부분도 이해하기 쉽게 되어 있다. 김씨의 번역으로 <최권>이 출판된 것은 다행한 일이다.
* 본 서평에서 사용되는 두 책 이외에도, 작년에도 浅見雅一씨와 安廷苑씨 두 분의 역사학자에 의해 한국 기독교 관련 저작이 中公新書 모습으로 간행된 것을 특기하고자 한다. 『韓国とキリスト教』(中央公論新社, 2012年).

* 번역: 이상경(재일대한기독교회 서부지방회 목사)
* 이 글은 『福音と世界』제68권 9호(2013年9月)에 수록된 것을 번역한 것이다.
선재원 '복음과 세계' 서평, 첫 페이지 밖에 읽을 수가 없네요.
아무튼 일본분들에게는 신선한^^ 목사님의 한국교회에 대한 지적이 일본교계에 많은 자극을 주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네요.

13·08·18 21:22 삭제

최형묵 저한테는 책을 보내와서 전문이 있어 다 읽을 수 있었는데, 인터넷에는 전문이 실리지 않았군요.
제가 곧 스캔해서 올리겠습니다. 일본 분들 하고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가운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읽었고,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는 가운데 이야기를 건네 와서 좀 놀랐습니다.
교토교구에서는 내년초에 그 주제를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하자고 세미나 일정을 공식 제안해 오셨습니다.

13·08·19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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