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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10일 포럼 발제2 : 밖에서 본 천안살림교회/주재일
 
화일명천안살림교회_주재일[1].hwp 등록일2010년 01월 06일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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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설명
밖에서 본 천안살림교회

주재일(전 <뉴스앤조이> 기자 / 현 아름다운 마을 소식지 편집자)

들어가며 : 불가능한 일을 부탁을 받고

밖에서 안을 들여다본다는 게 가능할까요. 실험실에서는 ‘객관’적인 위치에서 실험 대상을 살펴볼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그게 쉽지 않습니다. 얼핏 드러나는 인상의 조각을 모아서 ‘당신들은 이런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한다 하여도 공감을 얻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코끼리 장님 만지듯이 엉뚱한 이야기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누구나 자신과 이웃에게 평가를 내리며 살지만, 그것은 자신만의 생각으로 머물 때 더 안전한 법입니다.

진정한 평가는 살과 살을 맞대며, 사건을 함께 통과하며, 더불어 고백하는 내용이 풍성해지면서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만나는 법을 알고 있습니다. 우선은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길입니다. 한국 개신교인들에게는 무척이나 익숙한 방법입니다. 그렇지만 내안에서 울리는 하나님의 음성은 내 욕망과 뒤섞이면서 혼탁해지기 시작합니다. 어디까지가 하나님의 음성이고, 어디서부터가 내 욕망인지 나조차도 헷갈립니다. 무언가에 강하게 집착하고 있을 때는 다른 사람은 다 알아도 나만 모르는 어리석음에 빠지기 쉽습니다. 내가 나를 속이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가장 안전한 길은 지체들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일입니다. 지체들과 동행하며 지체들의 입을 빌려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나의 은밀한 욕망이 속일 수 없는 분입니다. 다만 지체들의 말을 정직하게 들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여러분과 그러한 지체로서의 돈독한 신뢰를 쌓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드리는 말씀은 결코 하나님의 음성이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기자로 일하며 만나온 최형묵 목사님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여러분만큼은 아니지만, 잠깐씩 뵙는 최 목사님에게서 가식 없는 목회자이자 학자의 양심이 느껴졌습니다. 최 목사님과 조금 여유롭게 목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되었습니다. 가끔은 천안살림교회 홈페이지에도 들러 목사님의 설교와 성서연구, 논단 들을 읽고 갔습니다. 내친김에 살림소식도 곁들여 보았습니다. 저로서는 홈페이지가 활발하지 않아 다행이었습니다. (읽을 글이 그리 많지 않으니까요.) 사실 온라인은 오프라인 사귐의 빈틈을 매우는 ‘보조’역할이기 때문에, 그것으로 교회의 모습을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역시 맞대고 만나야 알 수 있는 법이지요. 그래도 아쉬웠습니다. 홈페이지로는 파악할 수 있는 천안살림교회의 공동체 모습이 뚜렷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드리는 말씀은 함께 길 떠나는 길벗이 드리는 축하 인사로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저도 이런 잔치에 초대 받게 되어 진심으로 기쁩니다.

1. 썩지 않는 설교를 맛보다

농산물은 4도 정도의 저온에 저장합니다. 더 내려가면 얼어버리는 아슬아슬한 온도입니다. 절박한 현실에서 생존하려고 자신 안에 있는 온 생명의 기운을 품어냅니다. 사람 편에서는 더 싱싱하고 맛있게 느껴집니다. 교회 공동체도 이러한 생명의 임계점에 있는 듯합니다. 물론 날 때부터 수천 수만의 교인수를 자랑하는 교회나 수십억, 수백억, 요즘에는 수천억 원짜리 ‘성전’을 짓는 교회들이 제법 됩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알지만, 아무리 보아도 그것은 생명이 아니라 자본의 논리입니다. 예수님이 그토록 싫어했던 성전체제입니다. 생명 공동체가 아니라 교인공장, 교회사업인 것 같기만 합니다.

우리 이야기로 돌아오면, 늘 생존에 위협 받는 현실에 터한 교회들은 살아남기 위해 또 다른 타협과 위선에 빠지기 쉽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변질을 의식하면서 복음의 정신을 아주 약간씩 타협해 들어갑니다. 설교가 요란해집니다. 생명이 아니라 자꾸만 과업에 목매게 만듭니다. 보이지 않는 관계의 두터움보다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물증을 내놓는데 혈안이 되게 됩니다. 그러는 사이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말씀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전락하기 쉽습니다. 나중에는 신앙과 양심에 거리낌을 느끼지 않고도 거짓 복음을 선포하고 받습니다. 능력 있는 종과 사이비 종교인의 간격은 백짓장만큼이나 얇습니다.

천안살림교회도 10년을 걸어오면서 절박한 순간, 타협을 강요받는 시험의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겠지요. 목회자는 속이 타고, 교인들은 애간장이 녹는 시기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제법 꾸준히 목사님의 설교를 들어오면서, 변해 간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다. 사실 <뉴스앤조이>에 목사님들의 설교를 올릴 때, 최 목사님의 글을 담당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자기주장을 위해 성서를 억지 해석하지 않았기에, 연구 성찰해온 신념에 따라 설교하였기에, 시대의 질곡과 교회의 책임을 외면하지 않았기에 목사님의 설교는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있었습니다. 배운 것과 목회는 다르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듯하지만 비겁한 논리가 통용되는 시대에는 당연한 것이 돋보이나 봅니다. 앞으로도 천안살림교회가 헤쳐 나갈 미래에 목사님의 설교는 든든한 좌표가 되리가 생각합니다.

2. 목회자와 교인의 성숙한 관계를 보다

의존하는 신앙은 편합니다. 노예도덕이지요. 목회자가 답을 주면 참 쉽습니다.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무엇보다 실패해도 내 책임은 아닙니다. 목사님이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이니까요. 목회하는 입장에서도 답을 주는 게 명쾌해서 좋습니다. 특히나 우리나라 교회는 교인 모두에게 일관적으로 적용되는 것들에 익숙합니다. 그런 것들이 신앙의 척도입니다. 술과 담배의 문제가 그랬습니다. 숱한 문제들이 ‘술과 담배’라는 외적 기준에 가려 은폐되는 것입니다. 요즘 대학선교단체에서는 연애를 금지합니다. 사실 자신의 목회 영역에서 청년들의 연애를 제외시켜버린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율법주의는 오히려 방종을 낳습니다.

최 목사님은 설교에서도 상담에서도 대화에서도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기보다는 고민을 던져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드러운 성품이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기존 신앙에 익숙한 사람들은 답답하거나 박력이 없는 지도자로 여길 수도 있습니다. 충분하게 대화를 나누며 함께 헤아려보지만 최종판단은 교인 스스로에게 맡기는 것은 신뢰가 싹트지 않는 관계에서는 내버려두는 행위로 전락할 가능성이 큽니다. 무책임한 목회자가 되는 것이지요. 어떤 방문자가 천안살림교회에서는 왜 천당과 지옥을 이야기하지 않느냐는 비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천당과 지옥에 대한 약속은 신심을 고취시키는 좋은 약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급수가 낮은 처방입니다. 성숙한 판단을 내릴 때까지 기다려주고 교육하는 것은 당장 눈에 보이는 답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답답할 노릇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질문했던 사람도 천안살림교회를 떠났다고 합니다.

이쪽과 저쪽의 갈림길에서 한쪽을 편드는 일은 쉽습니다. 그렇지만 진실은 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 너머에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고뇌와 함께 하는가봅니다. 멋스러운 말이 아니라, 삶과 목회의 현장에서 실천하며 성찰하는 것이 고뇌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최 목사님의 성품이기도 하고, 저와 인터뷰하면서 최 목사님은 교인들도 자신을 닮아간다고 표현한 적 있습니다.

“교인들이 목사를 닮아가는 건지 서로 영향을 받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묘하게 이제 함께 하는 교인들을 보면 한 사람 한 사람 성격이 다 다른데 조금 더 들여다보면 목사 성향과 많이 닮았더라고요. 그러니까 목사가 주도적으로 이끌지 않아도 같은 뜻을 품을 수 있지요.”

3.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선 결정

천안살림교회 홈페이지 교회소개 방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민주적인 교회 : 교회에서 목회자의 지도력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모든 평신도가 교회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목회자와 평신도, 남성과 여성, 어른과 어린이 사이의 불평등한 차별이 없는 민주적인 공동체를 지향합니다.”

천안살림교회는 직접민주주의 원칙을 고수하며 대부분의 사안을 목사가 단독으로 판단하고 처리하지 않고 교인들과 의논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한 교회 자체 정관도 마련했습니다. 최근 교회 내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교회들이 민주적인 정관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천안살림교회도 그러한 교회 가운데 하나입니다. 의논하고 합의해가는 과정이 좀 더디기 하지만, 최 목사님은 훨씬 편하다고 말합니다.

지난 2007년 다른 교회가 통합하자는 제의를 받고 논의하는 과정은 천안살림교회가 내부에서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한 예였습니다. 논의 전개를 교인들이 이끌었고, 통합에 필요한 다양한 문제들을 점검하는 것도 교인들의 몫이었습니다. 이러한 교인들의 논의 과정에 대해 개념이 없는 상대방 교회에서 “목사가 하라고 지시하면 되지 왜 교인들이 나서고 그러느냐”고 볼멘소리를 했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그러시더라고요. 최 목사가 까칠한 교인들 데리고 고생한다고. 그러면 나는 웃으면서 전혀 안 그렇다고 말하죠.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에요. 공동의 합의를 이뤄나가고 이것저것 따지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인데, 그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한테는 무지하게 까다로운 사람들로 보이죠. 그리고 목사가 맘대로 못하니까 무지하게 목사가 힘들 것으로 생각하더라고요. 저는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편해요. 교인들도 그렇게 공동으로 하는 게 편하게 느끼는 것 같고요.”

교회 통합 논의를 마무리하는 과정에서도 교인과 목회자의 상호 소통과 이해가 돋보였습니다. 사실 우리 시대의 가치가 ‘민주’다보니 민주주의에 대한 맹신이 있습니다. 사실 절차적 민주주의는 모든 시대를 뛰어넘는 진리는 아닙니다. 교회를 이끌어가는 원리, 하나님나라 백성들의 모습은 사실 투표와 다수결이라는 원리에 구속될 수는 없습니다. 성령의 이끄심을 인정할 수 있는 여지조차 두지 않는 창백한 민주주의보다는, 민주주의 원리를 상호 소통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고 민주주의가 담지 못하는 지점에서는 하나님나라의 백성들로서 교회만의 성숙한 소통 구조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무엇이 늘 옳다는 도식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 번 더 목회자의 의견, 느낌을 묻는 존중과 진솔하게 나누는 목회자의 겸양은 위기를 돌파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4. 책임지는 신앙

함께 결정하고 뜻을 모을 때까지 기다리다보면 저돌적인 추진력은 부족하기 마련입니다. 보통 교회들이 양적인 성장을 위해 사람들을 쉴 새 없는 프로그램 속으로 몰아넣지만, 천안살림교회에는 그런 현란한 양육 프로그램이 눈에 띄지 않습니다. 이웃, 소수자와 함께 하는 다양한 활동이 있지만, 의무는 아닙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생겼다가 활동 주체가 동력을 소진하면 자연스럽게 사라집니다. 물론 공간, 재정적인 한계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에는 부적합한 방식과 선택입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길을 걷는 천안살림교회는 용기 있습니다.

물론 자유스러운 분위기를 누리며 교인을 옭아매는 교리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은 늘 방종이라는 일탈로 흐를 수 있는 경계에 있습니다. 가령 한국교회를 양적으로 지탱하는 주일성수와 십일조를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신앙은 꼭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공동체 모두가 하나님 앞에 약속한 예배를 지켜 드리는 신실함을 잃어서는 곤란합니다. 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마음으로 공유와 나눔을 위해 드리는 헌금을 게을리 하는 것은 무책임한 신앙입니다.

최 목사님을 인터뷰했을 때, 교회가 지향하는 가치를 위협하거나 훼손한 위기는 없었다고 했습니다. 개별적으로 어려움을 겪거나 느슨해지는 경우는 있었겠지만, 지향 자체를 포기하는 일은 없었다는 말일 것입니다. 아울러 최 목사님은 뜻을 모으고 마음을 모았으면 같이 그 일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을 기억합니다. 성숙한 신앙을 배워가는 신앙인답게 주체성도 키워가야 한다는 다짐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마무리하며 드리는 유쾌한 꿈

교회 홈페이지에서 대형교회를 지향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보았습니다. “200명이 넘어서면 용기 있게 새로운 교회를 세울 수 있는 자세로 나아가겠다”고 하셨는데, 그런 날이 꼭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 때는 도시가 아니라 농촌에 분가 교회를 세우면 어떨까요. 진정한 유목은 더 좋은 것을 찾아 떠나는 게 아니라, 모두가 떠나는 곳에서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모두가 떠나는 곳에서 대안적인 삶의 양식을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 시대 교회의 몫이 아닐까요.

아울러 먹을거리를 자급하는 공동체를 이룬다면, 모든 것을 자본에 의존해야 하는 시대에 더 큰 싸움을 싸우며 하나님나라의 훌륭한 진지를 구축하는 전략이 되지 않을까요. 사람과 흙, 관계를 살리는 생명농업을 하면서 교회 공동체의 자급을 이루는 꿈은 결코 비현실적이지는 않습니다.

천안살림교회가 대형교회를 지향하지 않는 이유를 친밀한 공동체에 두었습니다. 일주일에 잠깐 만나는 관계를 넘어 생활을 공유하는 마을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은 어떨까요. 서로 마실 다닐 수 있는 거리에 모여 살면서 서로의 더 가까이에서 지켜주는 것입니다. 함께 모여 살면 프로그램으로 만들고 힘들게 약속하지 않아도 다양한 모임들이 필요에 따라 생성되었다가 소멸되고, 더욱 대안적인 생활양식을 만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공동식사를 일요일만이 아니라 평일로도 확대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랐던 초대 공동체처럼 성찬을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열립니다. 아울러 밥상을 따라 들어오는 먹을거리에 대한 불안과 욕망을 다스려갈 수도 있습니다. 함께 모여 산다면, 깊은 교제를 위해 다양한 공동생활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살림에서 소외되기 쉬운 남성들도 살림 능력을 키워가게 됩니다.

마을을 이루어 살면, 일주일 정도씩 돌아가며 여성과 남성들끼리 함께 생활하며 생활 속에서 수련할 수 있습니다. 공유하는 것들도 늘어납니다. 자동차도 함께 쓸 수 있고, 자기 집 서재에 쌓아놓은 책들로도 마을 도서관을 만들 수 있습니다. 자녀들도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에 맞게 교육하는 기초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사적인 축적을 줄여가고 공유를 늘려가면서, 초대 공동체의 모습처럼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며 하나님나라 백성들의 잔치를 일상에서 열어갈 수 있습니다.

함께 살면 더욱 많은 은사와 소명들이 튀어나옵니다. 그리고 서로 꾸었던 꿈이 이미 일상이 되어 있습니다. 내가 꾸었던 꿈을 다른 지체가 삶으로 일궈가는 모습을 보며, 꿈을 함께 이뤄가는 동동체적 경험도 맛볼 수 있습니다.

천안살림교회는 다른 교회들과 힘을 모아 연대하고, 지역사회에 필요한 교회가 되며, 생명과 인권을 옹호하는 교회가 되기를 지향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앞서 ‘깊은 영적 체험을 추구함과 아울러 심신의 안식을 누리는’ 영적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 바람 그대로 삶으로 이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의 꿈을 현실로 누리는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에도 길벗으로 초대받기를 기대합니다.

<알림 : 또 한 분의 발제자이신 박종국 교우님의 원고는 탈고하였으나, 더 다듬어서 내일까지 올리기로 했습니다. >

* 최형묵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0-12-26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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