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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세상을 치유하는 원동력 - 마가복음 1:32~39[음성]
 최형묵    | 분류 :   | 2017·10·22 13:14 | HIT : 120 |
2017년 10월 22일(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제목: 병든 세상을 치유하는 원동력
본문: 마가복음 1:32~39



본문말씀은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는 첫머리에 어떤 일을 하셨는지 전해 주고 있는 말씀 가운데 한 대목입니다. 마가복음의 서두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셨는지 집약하여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전형적인 행동양식이 어떤 것이었는지 함축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크게 두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앞부분(1:32~34)은 예수님께서 공생애 동안 하신 일을 집약해서 보여주고 있고, 뒷부분(1:35~39)은 예수님의 전형적인 행동양식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본문말씀 이전에 갈릴리에서 공생애를 시작했다고 전하는 대목(1:14)부터 환기해볼까요? 먼저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합니다.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 그 다음 예수께서는 그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할 제자들을 부르십니다(1:16~20). 그리고 나서 사람들 가운데 들어가 구체적인 행동을 개시합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 가운데 들어가 사람들을 깨우치고 가르쳤을 뿐 아니라, 뭔가 중대한 행동을 펼칩니다. 두 가지입니다. 병자를 치유하신 것과 귀신들린 사람을 치유하신 것입니다(1:21~34).
치유행위를 전하는 내용을 보면, 먼저 가버나움 회당에서 귀신들린 사람을 치유하고, 이어 시몬의 장모의 열병을 치유합니다. 두 가지 구체적인 사례가 있은 후, 본문말씀에서는 사람들이 몰려왔다고 전합니다. “온갖 병에 걸린 사람들을 고쳐 주시고, 많은 귀신을 내좋으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의 핵심적 요체를 집약해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복음서의 맥락에서 이 두 가지 행위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곧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는 행위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 주는 구체적인 표징에 해당합니다. 새로운 세상이 도래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주는 일들입니다. 그것들은 지금 인간들이 겪고 있는 두 가지 고통의 상태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께서 그 고통을 치유해주신 것입니다.
질병, 그것은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삶의 고통입니다. 건강하지 못하고 자유롭지 못한 몸의 고통입니다. 예수께서는 그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는 누구나 부여받은 생명을 온전히 누리는 조건을 부여해주는 것을 뜻합니다.    
다음으로 귀신들린 상태, 그것은 인간의 정신적 삶의 고통을 말합니다. 귀신들렸다는 것이 과연 무엇을 말할까요? 제 정신이 아닌 상태입니다. 스스로가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예수께서는 ‘귀신을 몰아냄으로써’ 스스로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바로 세워 저마다 각자 삶의 주인으로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는 저마다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오늘 우리의 삶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물질적 육체적 삶의 고통 가운데 있습니다. 인간이 물질적 육체적 삶의 고통에서 온전히 해방된 적이 없지만, 오늘날 겪고 있는 물질적 육체적 삶의 고통은 참 기이합니다. 그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이 인간의 문명을 발전시키고 정말 넘쳐나는 물질적 풍요를 이루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숱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땀 흘려 일하면 최소한의 생존은 보장되어야 하는데, 땀 흘려 일해도 최소한의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 기이한 현실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신은 멀쩡할까요? 역시 기이합니다. 인간의 지성이 고도로 발달했다고 하지만, 인간은 스스로의 삶을 온전히 통제하며 살아가고 있지 못합니다. 과거 인간은 알 수 없는 자연의 위력 앞에 두려움을 갖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인간의 문명을 발전시켰지만, 이제 인간은 사실은 인간이 만들어낸 질서에 불과한 것을 신비하게 여기며 그것에 매여 불안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팔릴 수 있는 상품이 되는 것만이 가치를 지니고, 이윤을 남길 수 있는 것만이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인식되는 세상, 사람들은 그 세상을 숙명적인 질서로 알고 매여 살아갑니다. 물건만이 아니라 사람 자체가 상품이 되어 있습니다. 스펙을 쌓아야 살아남는다는 것은 사람 자체가 상품이 되어 버렸다는 구체적 증거입니다. 인간의 감정도, 마음도, 심지어는 눈물과 웃음도 다 상품이 되어 있는 세상입니다. 돈으로 환산되지 않은 것은 모두 무가치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인간의 역사상 이렇게 정신 나간 세상이 또 있었을까요?
며칠 전 고리원자력 발전소 5ㆍ6호기 건축재개에 관한 시민공론화위원의 의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고, 결론 또한 절묘하다고 할 수 있기는 합니다. 줄여 말하면 결론은, ‘원자력발전은 줄여야 하지만 현재 건설중인 발전소는 계속 지어야 한다.’는 것으로 집약되었습니다. 일종의 분열증적 결론 아닐까요?  이 분열증을 불러일으키는 실체가 뭡니까? 비용의 문제, 돈의 문제입니다. 우리 시대 정신분열증을 일으키는 핵심요인입니다.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의 핵심은, 그 분열증을 겪는 사람들을 고치는 것이요, 그 분열증을 야기하는 세상을 바꾸는 것입니다. 더불어 그로 인해 겪는 온갖 육체적 물질적 고통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앞서 이야기한 대로, 이어지는 예수님의 행적을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전형적인 행보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본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앞서 확인한 대로, 갈릴리 땅에서 공생애를 시작한 예수님께서는 아주 분주한 시간을 보내십니다. 사람들을 가르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사람을 치유해주느라 아주 분주합니다. 그 모든 일이 당신이 선포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구체적인 표징이었기 때문입니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그 소문은 퍼져나갔고, 그 결과 예수님 주변에는 사람들이 운집하는 상황이 됩니다.
그러나 날이 아직 어두울 때 예수님께서는 홀로 있기를 자처하십니다. 이른 새벽 외딴 곳으로 가셔서 기도를 하셨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전하는 상황만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날이 어두워지면 사람들을 피해 외딴 곳을 자주 찾습니다. 예수님께서 외딴 곳을 찾는 시간은 기도하는 시간이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보여 주신 것과 물러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긴밀히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본문말씀은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물러서는 시간이 있었기에 예수님은 사람들 앞에 나설 때에도 항상 흐트러지지 않고 마땅히 감당해야 할 몫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상황은 조금 미묘합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외딴 곳에서 기도를 드릴 때 사람들이 몰려와 찾습니다. 이른 새벽부터 사람들이 몰려드는 사태를 보고 제자들이 예수님을 허겁지겁 찾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예수님께서는 홀로 있는 시간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당신을 찾고 있으니 더 이상 홀로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당신을 찾는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몰려드는 인파의 요청을 거스르지 않고 다시 나섭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여러 고을들을 돌아다니기 시작합니다.
이 사태는 민중들의 요구가 그렇게 절박하다는 것을 말하며, 곧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의 도래가 그렇게 급박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쉴 틈이 없이 다시 나서야 하는 상황은 바로 그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복음서의 기자는 그 급박한 상황을 알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활동이 과연 얼마나 민중들의 요구에 절실하게 부합하고 있었던 것인가를 강력하게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스스로 갈릴리 민중들을 찾았던 예수님은 이제 민중들에게 떠밀리고 이끌리다시피 하며 민중들과 행보를 함께 합니다. 그 사실이 중요합니다. 항상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 사람들과 함께 계심으로써 당신께서 선포하신 뜻을 이루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재삼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예수님께서 스스로 물러서는 시간을 선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스스로 자기를 돌아보고 하나님의 뜻을 재삼 확인하는 기회를 찾는다는 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 물러서 있는 시간이 그다지 극적으로 묘사되어 있지는 않지만, 다른 본문에서는 그렇게 물러 서 있는 결코 예사로운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변화산상에서의 예수님과 제자들(마가 9:2-13),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마가 14:32-42)의 모습은 그렇게 물러 서 있는 시간의 참 뜻을 보여줍니다. 그 시간은 진정으로 자신을 깊이 돌아보는 시간이요 하나님의 뜻을 재삼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시간이요, 그렇게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인지를 묻는 시간입니다. 그 시간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나아가서 행해야 할 바를 깨닫고 확인합니다.

나설 때가 있으면 물러설 때가 있는 법입니다. 그 균형이 깨지면 세상 만물이 조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죽은 듯이 숨죽이는 겨울이 있어야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내놓습니다. 한밤중에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한낮에 왕성하게 활동합니다. 물리적 생리적 주기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정신적 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서서 행동할 때가 있으면 물러서서 자신을 성찰할 때가 있어야 합니다. 아마도 사회적 역사적 주기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질풍노도와 같이 변혁해야 할 때가 있는가 하면 차분하게 안정을 도모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너무 쉽게 깨달을 수 있는 이치입니다.
최소한 일주일에 한번 각자의 일상을 접고 물러설 수 있는 이 시간을 누리는 것이, 여러분 각자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옵니까? 교회에서 맡은 역할로 또 다른 노동의 연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면 유감입니다.^^ 몸이 비록 분주히 움직이더라도, 혹은 더 많은 생각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일상의 삶의 차원에서 겪는 것과는 확연히 구별되고, 그야말로 스스로의 내면을 통해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우리는 복된 기회를 누리는 것입니다. 최소한 우리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고,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 할 삶의 진실을 생각할 수 있다면, 우리는 복된 기회를 누리는 것입니다.
여기에 모인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건강해질 수 있다면, 우리는 저마다 보람 있는 삶을 누리는 것이며, 저마다의 삶의 현장에서 치유의 손길을 펼칠 수 있으며, 치유의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교우들은 저마다의 삶의 현장에서 그 몫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서 지금 분투하는 교우들도 있습니다(평택대학교에서, 한신대학교에서...). 건강한 교회의 지체로서 마땅한 몫입니다.
우리들이 여기에 모여 하나님 앞에서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새로운 삶의 결의를 다질 때, 이 땅을 향한 우리의 발걸음이 더욱 힘찬 발걸음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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