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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 말라, 진실을 말하라 - 마태복음 10:26~31[음성]
 최형묵    | 분류 :   | 2017·10·29 19:02 | HIT : 129 |
2017년 10월 29일(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제목: 두려워 말라, 진실을 말하라  
본문: 마태복음 10:26~31



본문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으로, 단적으로 말하면, 진실을 말하는 데 두려워할 것 없다는 말씀입니다.
누가복음에도 거의 동일한 내용이 등장하는데, 그 문맥상 다소 강조점의 차이가 있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적대자인 바리새파 사람들을 비판하는 맥락에서 제자들에게 주는 말씀으로 되어 있습니다. 크게 보아, 진실을 대면하기를 두려워하고 진실을 은폐함으로써 자신들을 지키고자 하는 이들처럼 되지 말고,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진실을 말하라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선택하신 후 그들을 파송하면서 전하는 말씀으로 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본문말씀은, 진실을 말할 수 없는 엄혹한 현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그 현실 가운데서 진실을 말할 것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엄혹한 현실 가운데 처하여 있지만, 두려워 말고 진실을 말하라는 데 그 초점이 있는 것입니다.

본문말씀을 따라가며 그 의미를 새겨보겠습니다.

본문말씀 바로 앞의 내용은, 예수님으로부터 파송을 받은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를 전파할 때 부딪히는 엄혹한 현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보내는 것이 마치 어린양을 이리 떼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다고 그 심정을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유명한 말씀, 뱀같이 슬기롭고 비둘기같이 순진하라는 말씀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제자들을 보내는 것이 이리 떼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은 까닭은,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제자들이 사람들에 의해 법정에 넘겨지고, 회당에서 매질 당할 것이기 때문이며, 또한 제자들이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이방인들 앞에서 증언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가족을 비롯해 가까운 사람들로부터도 미움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숱한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두려워 말고 끝까지 하나님의 진실을, 평화의 복음을 전할 것을 독려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께서 전하셨고, 또 제자들로 하여금 전하게 한 하나님의 진실, 하나님의 나라가 현존하는 세상과 화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말씀은, 그 맥락에서 진실을 밝히고 증언하는 일의 의미를 재삼 강조하고 있을 뿐 아니라, 진실을 말하는데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을 만큼 엄혹하다 하더라도 두려움을 가져야 할 까닭이 없는 이유를 덧붙이며 제자들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덮어둔 것이라 해도 벗겨지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라 해도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지붕에서 외쳐라.”
진실을 은폐하고, 진실을 말하는 사람을 박해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진실은 필연코 드러나게 되어 있으니, 그 진실을 알고 있다면 말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진실은 오랜 인간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을 뿐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 현실이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 그간 얼마나 많은 진실들이 권력의 장막 뒤에 가려져 있었습니까? 그러나 하루하루 그 은폐되었던 진실이 하나하나 밝혀지고 있지 않습니까?
본문말씀은, 진실을 말하는 데 두려워할 까닭이 없는 이유를 부연해서 역설합니다.
“몸은 죽일지라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도 몸도 둘 다 지옥에 던져서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참새 두 마리가 한 냥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하나라도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놓고 계신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여기서 ‘몸은 죽일지라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이라는 말이 함축하는 의미는 중요합니다. 몸과 영혼이라는 말이 등장하면, 곧바로 이분법적으로 육체와 분리된 영혼을 연상하기 쉽지만, 성서에는 본래 그런 관념이 없습니다. ‘몸 안에 깃든 영혼’이라 이해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온전한 인격체를 말합니다. 여기서 영혼은 ‘나의 나됨’, 곧 주체적 인격을 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말은, 겉으로 드러나는 외적인 삶을 파괴할 수 있다 하더라도 ‘나의 나됨’, 진정한 주체로서 인격까지 파탄낼 수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세상의 권력이 나를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다 하더라도 나의 인격까지 파탄낼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어떤 고초를 겪는다 하더라도 자신의 인격마저 내팽개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단 돈 200만원에 진실을 은폐하고, 자신의 인격을 팔아먹을 수 없지 않느냐는 이야기입니다. 세상의 권력은 고작 그런 수준에 지나지 않은 걸, 두려워할 까닭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진정한 주체로서 인격과 그 존재의 소중함은 다음 이어지는 말씀을 통해 더욱 강조됩니다. 기껏해야 우리의 외적 삶을 건드리고 괴롭힐 뿐인 세상의 권력을 두려워하기보다는 모든 존재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신뢰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적절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세상의 권력을 두려워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돈 몇 푼이면 사고 팔 수 있는 참새 하마리라도 소중히 하는 분입니다. 하물며 너희야 어떻겠느냐는 이야기입니다. 본문말씀은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고 하십니다. 머리카락 하나하나 헤아릴 만큼 애지중지하신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말씀은 요컨대, 진실을 말하는 데 두려워할 까닭이 없는 진정한 이유가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저마다의 존재를 온전한 인격체로서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바로 그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실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믿는 것은 진실을 두려움 없이 세상에 말하는 것을 뜻하고, 그렇게 두려움 없이 진실을 말하는 것은 하나님 안에서 내가 나의 나됨, 한 인격으로서 온전히 존중받는 존재로 보장받고 있다는 것을 믿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단순한 보도자가 아닙니다.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사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 가운데서, 하나님 안에서 가능하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리는 기념주일입니다. 95개조 격문을 발표한 10월 31일을 즈음해서 지키는 기념주일입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의 요체가 뭘까요?
루터는 유럽의 역사에서 중세의 막바지에 근세를 열었던 인물로서 매우 복합적인 면모를 지닌 인물이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시피 평생 26차례에 걸쳐 목숨을 건 싸움을 하였기에 교회와 세상을 향해 내놓은 말이 많습니다. 그런데도 아우구스티누스나 아퀴나스, 또는 칼빈처럼 자신의 사상을 집대성한 단일 저작을 남기지 않은 까닭에 간단히 그의 사상을 말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시대적 맥락에서 종교개혁, 아니 유럽사회의 개혁(Reformation)을 가능하게 했던 그의 사상의 요체를 확인하는 것이 결코 어렵지는 않습니다. 그의 사상의 핵심은 매우 단순합니다. 한마디로 집약한다면, 그것은 ‘교회를 교회답게’ 한 데 있습니다. 그 의미를 부연하면, 교회로 하여금 세속권력을 내려놓으라는 데 있습니다. 권력을 버리는 데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꼬집어 말하면 교회가 사법권을 포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래야 할까요? 교회는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곧바로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일에 대해 무관심해야 한다는 것으로 곡해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루터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두 가지 방식으로 세상을 통치하시는데, 하나는 교회를 통해 복음과 사랑으로, 하나는 세상 국가를 통해 법과 이성으로 통치한다고 보았습니다. 그것을 뒤섞어 교회가 다 움켜쥐고 있으니 교회가 권력자로서 세상에 군림하며 부패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루터가 교회로 하여금 권력을 내려놓으라고 하자 세속사회가 해방되었고, 그로부터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었습니다.  
루터가 교회를 교회답게 해야 한다고 역설한 데는 온전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는 그의 믿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것이 개인의 해방을 초래했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되었을까요? 이전의 교회에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수없이 많은 장치들을 설치해뒀습니다. 하나의 기관으로서 교회, 교회의 전통, 성례전, 사제 등등을 매개서해서만 하나님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루터가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강조하였을 때 그 모든 것이 상대화되었습니다. 여기서 한 사람 한 사람 인간이 해방되었습니다.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고,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고유한 인격체로서 개인의 존재가 비로소 역사에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루터는 다른 많은 동시대인들과 달리 스스로 그 자각을 갖고 있었기에 교회의 불의에 항거하여 진실을 외칠 수 있었습니다. 그 진실이 만천하에 선포되었을 때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인간이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어떨까요? 종교개혁은 기념하지만, 그 정신과는 멀어져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 안에서 세상을 향하여 진실을 외치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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