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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실한 청지기 - 누가복음 12:42~48[음성]
 최형묵    | 분류 :   | 2017·11·26 14:13 | HIT : 66 |
2017년 11월 26일(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제목: 신실한 청지기
본문: 누가복음 12:42~48



오늘 우리는 누가복음의 본문을 함께 읽었습니다. 아주 쉬운 본문말씀입니다. 누가복음에는(16장)에는 또 다른 청지기 이야기, 다시 말해 ‘불의한 청지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본문말씀은 이해하기가 결코 간단치 않은 반면 오늘 본문말씀은 읽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될 정도로 간명한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뜻을 다시 새기기 위해서 전후문맥을 살펴보겠습니다.
바로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의 앞을 보면, 혼인잔치에 갔다가 되돌아오는 주인을 맞이하는 종들의 태도가 어때야 하는 것인지를 말하는 비유가 등장합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일깨워주는 비유입니다. 주인이 혼인잔치에서 돌아와서 문을 두드릴 때 곧 열어 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비유입니다. 그렇게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곧바로 맞이하는 종이 있으면, 주인은 그 종을 식탁에 앉히고 오히려 시중을 들어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는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가 끝나자 제자 베드로가 묻습니다. 그 이야기가 누구에게 해당하는지 확인합니다. “저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말씀의 청지기 비유를 덧붙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교훈이 될 만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특별히 제자들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데 의도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비유입니다. 베드로의 그 물음은 특별히 초대교회 사도들, 곧 교회 지도자들의 책임의식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누가 신실하고 정의로운 청지기일까 물음을 먼저 던지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주인이 청지기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종들에게 제때에게 양식을 주며 돌보라고 합니다. 만일 주인의 명을 따라 그대로 한 청지기라면 그 청지기는 복이 있을 거라 합니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 청지기에게 맡길 것이라 합니다. 반면에 주인이 늦게 올 것이라 생각하고 종들을 때리고 흥청망청하고 있다면, 그는 뜻밖의 시간에 나타난 주인에게 혼날 것이라 합니다. 그 청지기는 주인에게 매를 맞고 벌을 받을 것이라 합니다. 여기서 어떤 청지기가 신실하고 정의로운 청지기인지는 분명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여기에 한 말씀을 덧붙입니다. 이 역시 어려울 것이 없는 말씀입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그대로 하지 않은 사람은 더 많이 맞고, 주인의 뜻을 모르는 채 매 맞을 짓을 했다면 더 적게 맞을 것이라 합니다. 과연 알고 지은 죄가 더 큰지, 모르고 지은 죄가 더 큰지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본문에서는 알고 지은 죄가 더 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책임을 강조하는 맥락에서 볼 때 당연한 것입니다. 자유인의 책임이 클까요? 노예의 책임이 클까요? 오늘의 사회적 현실과 관련하여 어른의 책임이 클까요? 아이들의 책임이 클까요? 그 맥락에서 보면 이상할 것이 없고 당연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말씀은 그 의미를 다시 한번 더 분명하게 확인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많이 받은 사람에게서는 많은 것을 요구하고, 많이 맡긴 사람에게는 많은 것을 요청한다.”
이 비유는 예수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 믿는 종말론적 믿음과 결부되어 있고 특별히 예수님을 기다리는 초대교회 상황에서 교회 지도자들의 책임을 강조하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의 책임이 크니 신도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비유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비유의 의미는 비단 초대교회의 교회 지도자들에게 한정된 것만은 아닙니다. 오늘 우리 시대의 교회 지도자는 말할 것 없거니와 오늘 우리 시대의 사회적 지도자들에게도 의미를 던져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은 오늘 이 시대 사회 모든 분야의 책임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일깨워주는 말씀으로서 일차적으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한국사회에서 본문말씀은 각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제가 늘 이야기하지만, 한국은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빠른 속도로 근대화를 성취한 이른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식민지와 분단의 악조건을 감내해야 했지만, 놀라운 속도로 경제적 산업화를 이루고, 근래에는 정치적 민주화를 이뤄나가게 되었습니다. 세계 10위권에 이른 경제규모, 특별히 최근 세계의 많은 나라가 민주주의의 퇴보를 경험하는 조건 가운데서 민주화를 전진시키고 있는 것은 분명히 자랑할 만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사회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주권자로부터 국정을 위임받은 정치인들이 제 몫을 다하지 못하였다는 것은 긴 설명 필요 없이 실감하고 있는 현상입니다. 정치인은 엄밀히 말해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조건 안에서 몫을 감당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헌법이라는 사회계약 안에서 국민은 자신들의 대표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대표자들은 위임받은 청지기로서 그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열거하지 않아도 다 압니다. 권한을 위임받은 이들이 그 권한을 완전히 사유화하고 국정을 농단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하나하나 밝혀지고 있는 것들을 보면 기가 막힐 지경입니다. 그런데도 그 적폐를 청산하려는 시도를 과거에 발목잡힌 것이라 둘러치고 아무렇지 않게 호도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큰 책임을 부여받았으나 그 책임을 오용하였다면 그 책임의 오용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로 인해 고통을 겪은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 본문말씀의 표현을 따르면, 사람을 때리고 자신들은 먹고 마시는 일에 탐닉한 것 아닙니까? 정치윤리를 제대로 세우지 않으면 그런 사태는 또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경제윤리는 어떨까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에 걸맞는 경제윤리가 있습니까? 아직 멀었습니다. 단적인 예를 들면 오늘 한국의 유수한 대기업은 과연 누구의 것일까요? 아, 그 전에 한 가지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있지요. 다스는 도대체 누구 겁니까? 다시, 오늘 유수의 대기업은 누구 겁니까? 오늘날 대다수 대기업은 이미 사회화되어 있습니다. 이윤의 원천인 생산과 소비의 과정 자체가 그럴 뿐 아니라, 사실 소유 자체도 그렇습니다. 창업주의 지분이 겨우 몇 퍼센트 비율 되지도 않은 것을 갖고 배타적 소유권을 주장하고 경영권을 주장하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요? 그것이 타당하지 않다는 것은 최근 삼성의 경우를 봐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기업이 사회화되어 있다는 것은 오늘날 기업 역시 공적 책임을 부여받은 일종의 청지기와 같은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경영의 측면에서, 노동자의 권리 보장 측면에서 철저한 경제윤리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기업은 이윤추구를 본성으로 하지만, 그것이 사회적 공익을 현저하게 해치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포악한 천민자본주의의 지옥에서 숱한 사람들이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교회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최근에 대표적인 대형교회 가운데 하나가 또 무리한 세습을 강행함으로써 교회 안팎으로 지탄의 소리가 높습니다만, 그런 교회가 선망의 대상이 된 것 자체가 문제 아닙니까? 그 안에 모인 사람들, 아마도 신실한 신앙인을 자처할 텐데, 그 사람들의 윤리의식은 어찌 된 것일까요?
오늘 한국교회는 교회가 명백히 사회적으로 공적 책임을 부여받고 있는 사회적 청지기라는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신앙은 각자 선택과 결단의 문제요, 그러기에 그 특별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공동체로서 교회는 자신들만의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역할해야 한다는 것은 재삼 확인할 필요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는 사회 구성원으로부터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공적 역할을 부여받은 사회적 청지기 역할 또한 자각해야 합니다.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고, 또한 교회가 일정정도 국가와 시민사회로부터 특정한 수혜를 누리는 까닭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교회 역시 사회계약의 범위 안에서 책무가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바로 어제 저는 “루터의 두 왕국론 근대 주권국가”에 관한 연구논문을 발표할 기회를 가졌습니다만, 몇 주 전에도 이야기했다시피, 그리스도인 교회와 국가 사이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공적 책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으로서 특별한 방식으로 교회를 구성하지만, 또한 그리스도인자 동시에 세속사회의 시민으로서 세속사회 안에서 그 사회를 더욱 선하게 해야 할 책임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거늘 사회의 평균적 윤리의식에도 미치지 못하는 태도로 어떻게 교회가 사회를 선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는 그야말로 깊은 영성을 바탕으로 높은 윤리의식을 갖고 사회를 선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존재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은 보다 높은 정치윤리, 경제윤리, 종교윤리를 요청받고 있습니다. 그런 윤리의식이 고양될 때, 특별히 중요한 책임을 맡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런 윤리의식이 고양될 때 우리 사회는 살 만한 사회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우리 사회에 그 각성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더 나아가 오늘 본문말씀은 비록 사회의 지도적 위치에 있다고 느낄 수 없는 평범한 모든 사람에게도 경종이 되는 교훈이기도 합니다. 적어도 자신이 책임 져야 할 영역이 있고, 그것을 의식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예외없이 의미를 던져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내가 이 사회에서 타인과 더불어 당당한 일원으로, 이 사회 안에서 타인과 더불어 진정한 자유인으로 살아가고자 한다면, 내가 한 공동체에서 다른 구성원과 더불어 당당한 일원으로 살아가고자 한다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 땅에서 신실한 청지기 의식을 지니고 살아야 합니다.
그 말씀의 진실을 받아들임으로써 정의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일구어 나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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