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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를 뿌려라, 마땅히 열매를 누릴 것이다 - 마가복음 4:26~29[한신대 신대원]
 최형묵    | 분류 :   | 2018·04·11 22:53 | HIT : 58 |
2018년 4월 11일(수) 오전11시 한신대 신학대학원/ 생태공동체운동본부와 함께드리는 ‘씨뿌림’예배
제목: 씨를 뿌려라, 마땅히 열매를 누릴 것이다
본문: 마가복음 4:26~29


번역본에 따라 “자라나는 씨의 비유”(표준새번역) 또는 “씨의 성장에 관하여”(개역)라는 소제목이 붙어 있는 본문의 비유는, 이야기 그 자체로 보자면 하나도 어려울 게 없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쉬운 이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께서 과연 뭘 말씀하시고자 한 것일까 생각하면 그 답이 간단하게 찾아지지 않습니다. 성서의 많은 말씀, 그리고 복음서의 많은 비유들이 오용되고 있는 것처럼 오늘 본문말씀의 비유 또한 해석이 분분할 뿐 아니라 자주 오용되어 왔습니다.
아마도 이 비유에 대한 해석의 문제는 초기 교회부터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개 마가복음에 등장하는 비유들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도 약간 변형된 형태로 등장하는데, 이 간결한 비유는 다른 복음서에서 반복되지 않습니다. 다른 복음서의 저자들이 이 비유를 너무 밋밋한 것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거나, 아니면 어디에 초점을 맞춰 해석해야 할지 곤란을 겪었기 때문에 제외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늘 우리는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농부였던 예수님은 하나의 알곡이 맺히기까지의 오묘한 이치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목수였다는 점 때문에 농삿일과는 상관없는 분으로 알기 쉽지만, 고대 사회에서 목수 신분은 기본적으로 농민계층의 일원이었습니다. 농민이지만 평균적인 농민보다 더 못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수공업에 종사하였지요. 예수님은 농부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복음서의 거의 모든 비유가 농사짓는 일과 관련된 것은, 청중의 대부분이 농사짓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예수께서 스스로 그 일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비유를 다시 확인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고, 밤에 자고 낮에 깨고 하는 동안에 그 씨에서 싹이 나고 자라지만, 그 사람은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를 알지 못한다. 땅은 열매를 저절로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싹을 내고, 그 다음에는 이삭을 내고, 또 그 다음에는 이삭의 알찬 낟알을 낸다.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댄다. 추수 때가 왔기 때문이다.”
비유는 많은 초점을 지닌 이야기 방식이 아니라 단 하나의 초점을 간명하게 말하고자 하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오늘 본문말씀의 초점은 무엇일까요?

이 비유를 해석하는 견해가 다양하지만, 가장 널리 오용되고 있는 하나의 견해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가장 흔히 이해되는 방식은, ‘인간은 할 일이 없다. 오직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하신다.’ 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 비유를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이 비유는, 어떤 사람이 씨를 뿌리고 그 씨에서 싹이 나고 자라나 마침내 열매를 맺어 추수하는 일련의 과정을 하나님 나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일상적이며 자연스러운 과정에 대한 묘사일 뿐입니다.
여기에서 해석의 열쇠가 되는 말은 씨를 뿌린 사람이 그 과정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씨앗에서 싹이 나고 자라나 열매를 맺기까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본문에서도 분명히 말하고 있듯이 사람은 씨를 뿌립니다. 그것으로 끝일까요? 이 이야기가 들에서 자라나는 식물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고 농사를 짓는 것과 관련된 이야기가 분명한다면, 그 다음에 또 사람이 감당해야 할 몫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거름을 주기도 하고 김을 매주기도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물을 줘야 하기도 합니다. 농사를 지어 열매를 거두게 되는 데 사람의 노력이 결코 배제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본문말씀은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한다고 말함으로써 사람의 노력으로만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것 또한 중요한 이치를 말합니다. 이것 또한 이 비유를 해석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이 비유의 문을 여는 열쇠가 두 개 아니냐는 물음이 제기될 법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보십시오. 이 이야기가 하나의 교훈을 말하는 비유라고 할 때 어떤 것이 핵심적인 열쇠일까요?
땅의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결코 인간의 땀의 결과로써만 열매를 거둘 수 없다는 사실에서도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기는 합니다. 그 진실이 주는 교훈이 결코 사소하지는 않습니다. 하나의 씨앗이 많은 알곡을 내기까지는 인간의 손길, 인간의 땀만 배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진실을 일깨워 주며, 그것은 어떤 일이든 자신의 노력만으로 성취되지 않는 삶의 진실을 일깨워줍니다. 성서는 도처에서 그 진실을 일깨워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오늘 본문말씀 비유가 그 초점을 강조하는 데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본문말씀을 잘 들여다보면 아무래도 그 초점은 사람이 그 과정을 알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사람이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 노력을 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만의 힘으로 열매를 거두는 것이 아니라 땅이 열매를 맺히게 하기 때문에 사람은 그 과정을 하나하나 인지할 수 없다는 것으로 집약됩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씨앗이 변모하고 성장하여 어느 순간 많은 열매를 내는 과정을 일일이 알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알곡을 거두게 되는 기쁨을 누리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씨앗이 심겨져 싹을 틔우고 자라나 열매를 맺는 과정을 사람이 일일이 인지하지 못하지만 마침내 알곡을 거두게 된다는 이야기가 어떤 교훈을 줄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사람은 할 일이 없다는 것일까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분명히 씨를 뿌리고 가꾸는 사람의 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과연 어떤 교훈을 말하는 것일까요?

이쯤에서 우리는 이 이야기의 청중이 누구일까를 헤아려야 합니다. 성서에 기록된 바와 같이 그 청중들은 제자들이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개연성이 높습니다. 제자들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며 하나님 나라 운동에 동참한 사람들입니다. 이 비유의 청중이 그 제자들이라면, 이 비유의 말씀은 바로 그 제자들에게 주는 격려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어째서 이 비유를 통하여 제자들을 격려하고자 하였을까요?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다니며 하나님 나라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데도 뭔가 손에 잡히는 열매가 아직 없어 실망하고 낙담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법도 합니다. 바로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는 이런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씨를 뿌리고 가꿔라. 그것이 자라고 열매를 맺는 과정을 일일이 알지 못하지만 마침내 열매를 거두게 되지 않느냐?’,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땅히 해야 할 바를 다하면 마땅히 그렇게 되는 이치를 잘 알지 않느냐 하는 것을 일깨워 주고 계신 것입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할까요?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바를 다하고 그 결과는 하늘에 맡긴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겸허한 삶을 말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야말로 떳떳하고 여일한 삶을 말합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예수께서는 그 진실을 일깨워주고 계십니다.
오늘 한국사회를 사는 우리들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낙담하고 분노해 왔습니다. 경제규모로 보면 11위(수출규모로 보면 6위)를 자랑할 만큼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삶의 질은 그에 걸맞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은 지체되거나 퇴보하였고, 사회적 정의는 실종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동안 우리는 21세기 전도양양한 대한민국이 아니라 낙후하고 퇴보한, 거꾸로 돌아가도 한 참 돌아간 ‘헬 조선’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더 이상 폭발적인 민중운동이나 시민혁명이 가능하지 않다고 낙담할 즈음 촛불혁명을 경험했고, 그 기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정부가 탄생하여 과거의 적폐를 청산하고, 어려운 국제적 여건 가운데서도 평화를 이루기 위한 여정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 한 사람 한 사람 삶의 변화를 체감하기에는 더 근본적인 변화가 요구되고, 돌파해야 할 난관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변화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임에 틀림없고, 그러기에 우리는 더 이상 낙담하지 않고 새로운 사회,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갈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을 걷다 보면 마침내 목적지에 이른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그 믿음의 희망을 재삼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씨를 뿌려라, 마땅히 그 열매를 거둘 것이다.’ 이 진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줍니다.

지금 우리는 다행스럽게도 지금 일어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변화를 통해 그 믿음을 재삼 확인하고 희망을 갖고 있지만, 우리의 일상은 여전히 분노하고 낙담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정말 어떤 희망을 기대한다는 것이 부질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오늘 본문말씀의 비유를 말씀하실 때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너무나도 평범한 진실을 환기함으로써 제자들에게 다시금 하나님 나라에 대한 믿음을 환기하고, 용기를 북돋아줍니다. 그 평범한 진실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당시 누구나 경험하고 있는 진실입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은 다 아는 진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본문말씀의 비유를 단지 하나의 상징적 비유로서만이 아니라 실제적 교훈으로서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그 진실을 깨우칠 수 있고 체득할 수 있는 경험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과 그 청중들은 일상적으로 그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그 비유의 의미를 쉽게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종종 예수님의 비유를 해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까닭은, 2천년의 시간의 간극, 언어문화의 차이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삶의 체험이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일부러 그 경험을 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선각자들은 그 경험을 중요시하였습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시골에 살면서 텃밭[園圃]을 가꾸지 않으면 천하에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함석헌 선생은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천안에 씨알농장을 일구기도 했습니다. 이랑 하나 일구는 것도 반드시 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 농사로 소출을 얼마나 얻었을까요? 더욱이 요즘 시장가격으로 하면 그냥 사다먹는 게 훨씬 비용이 싸기도 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체험이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이 우리 삶에 주는 중요한 진실을 함축하고 있고, 그 체험 가운데서 그 진실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어떻게 체득할까요?
언젠가 이런 이야기했더니 어떤 사람이 그럼 땅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하냐고 하던데... 도시농업도 있고, 옥상 텃밭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도 모르거나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이 무자비한 ‘강제집행’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 말씀의 결론을 맺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말씀의 비유적이고 상징적인 그 의미만으로도 충분한 깨달음을 누릴 수 있지만, 그 의미를 체감할 수 있는 일상적 삶의 체험을 공유할 수 있다면 그 말씀의 진실에 더욱 깊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며, 하나님 나라에 대한 믿음 또한 더욱 확고해질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체험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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